2007년4월7일(토) - 성토요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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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4월7일(토) - 성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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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04-07 조회수 :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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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토요일 [성토요일] 십자가 : 무언(無言)의 메시지 예수님은 참으로 돌아가셨고 무덤에 묻히셨다. 예수님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셨으며, 인간실존이 경험해야만 하는 가장 부정적이고, 두렵고, 비참한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셨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하고 또 알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인간의 죽을 운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임을 말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오늘 하루 종일 십자가도 가리고, 제단도 벗기고, 감실도 비워둔 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내는 ‘성토요일의 무언(無言)의 메시지’이다. 물론 신약의 교회는 주님의 무덤 옆에 머물러 수난과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기도하며 이를 묵상한다. 예수님께서 생전에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요한 8,28) 과연 사람들이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았을까? 공관복음이 공통적으로 보도하는 바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신 순간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으며(마태 27,51; 마르 15,38; 루카 23,44),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던 백인대장이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태 27,54; 마르 15,38; 루카 23,47) 하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중의 하나로서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 총독에게 죽은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청하여 자기를 위해 마련해둔 무덤에 모시고는 그 입구를 큰 돌로 막았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도 이것을 지켜보았다.(마태 27,57-61; 마르 15,42-47; 루카 23,50-56) 요한복음은 아리마태아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셨다고 한다.(요한 19,38-42) 마태오복음은 그 다음날 대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빌라도에게 가서 경비병을 시켜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도록 간청했다고 전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생전에 공공연히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말을 믿게 하기 위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가는 속임수를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마태 27,62-66) 그러나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 사건의 결론을 대부분 알고 있다. 예수라는 인간이 겪은 이 참담한 십자가 죽음의 사건이 부활이라는 위대한 대역전극으로 끝난다는 것을. 그렇다고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날 것인가? 우리가 이 극적인 드라마의 결론을 알고 있다고 해서 식상하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으로서의 드라마일 뿐이다. 내가 주인공인 구원역사로서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매순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박상대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