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4월23일(월) - 부활 제3주간 월요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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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4월23일(월) - 부활 제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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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04-22 조회수 : 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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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6,22-29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22) 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 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복음산책]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이유 지난 금요일부터 이번 주간 토요일까지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이 미사전례의 복음으로 봉독된다고 하였다. 지난 토요일에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 위를 걸어서 배를 타고 있는 제자들에게 다가가신 내용(6,16-21)을 복음으로 들었다. 오늘 복음은 군중이 갈릴래아 호수 동편에서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이동했다(22-24절)는 보도와 여기서 주시는 빵의 기적에 대한 가르침(25-59절) 중 그 도입부에 해당하는 첫 부분(25-29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갈릴래아 지방의 카파르나움은 유다 지방의 예루살렘만큼 중요한 장소로 부각된다. 여기서 예수님의 놀라운 빵의 기적이 베풀어졌고 그 기적에 대한 진정한 해석과 가르침이 주어지기 때문이며, 그 외에도 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줄곧 거주하셨던 곳이며(마태 4,13), 이곳에서 많은 가르침과 행적(루카 4,23)이 베풀어졌기 때문이다. 빵을 배불리 먹은 군중이 예수님을 다시 찾으려는 노력이 카파르나움에서 예수님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였다. 왜 그들이 예수님을 찾았을까?(24절)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찾는 것일까? 그들은 분명 보리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예언자’를 찾고 있으며, 그들을 다시금 배불리 먹일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임금’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얻고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주시고자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빵의 기적을 행하신 호숫가에서 이곳 카파르나움으로 장소를 옮기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가르침을 위하여 수고스럽게 장소를 옮기셨다. 그렇다고 카파르나움에까지 와서 예수님을 찾아낸 군중이 새로운 가르침을 받기에 합당한 준비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머릿속은 빵의 기적에 대한 감동과 열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곧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육적인 세계에 대한 갈증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능하다면 빵을 배불리 먹었던 기억을 군중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어 하신다. 한꺼번에 둘 다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육적인 세계를 갈망하면 영적인 세계에 눈이 어두워지게 되고,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뜰 때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를 비로소 갖추게 된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그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을 위한 썩지 않는 양식이다. 이 양식을 사람들에게 베풀라고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을 권능과 함께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육신만을 배불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찾기보다는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즉 추구하라고 강조하신다. 불멸의 양식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그 첫걸음이자 결정적인 조건은 ‘불멸이 양식이 어떤 것’인지를 묻기보다는 ‘불멸의 양식을 주시고자 하는 자’를 믿어야 하는 것이 오늘 복음의 결론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도 있듯이 육신의 양식을 구하는 일은 일차적이며 본질적인 생물학적 욕구에 속한다. 비록 썩어 없어질 양식이긴 하지만 육신의 생명 부지를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그 양식을 취해야 한다.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물지 말라는 것이다. 육신을 위한 욕구에만 머물지 말고, 그보다 더 귀한 영혼의 생명 유지를 위한 양식을 추구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원의다. 이 원의가 어떻게 성취되는가? 하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