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4월24일(화) - 부활 제3주간 화요읿 >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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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4월24일(화) - 부활 제3주간 화요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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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04-24 조회수 : 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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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3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6,30-35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30) 그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31)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복음산책]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 육신을 배불리는 빵은 썩어 없어질 것이기는 하지만, 늘 필요한 욕구의 대상이다. 그래서 군중은 그 빵을 주셨던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6,14), 그들의 임금이 될 수 있는 ‘빵의 기적장이’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이다. 조를 짜서 수색전을 벌여 결국은 카파르나움에서 예수님을 찾아냈다. 군중의 눈에는 예수님이 육신을 배불리는 빵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찾으려고 애썼던 것이다. 찾는다는 말은 이미 다 만들어진 것을 뒤지거나 두루 살펴서 발견해 내는 일이다. 때로는 요구하거나 청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육신만을 배불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노력하기보다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즉 추구하라고 강조하셨다. 이 말씀은 불멸의 양식이란 썩어 없어질 양식처럼 찾을 수 있는 어떤 무엇이 아니라, 목적한 바를 이루고자 끝까지 좇아 구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불멸의 양식이란 이미 다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찾을 수 없고 오직 추구될 수 있을 뿐이다. 불멸의 양식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조건은 불멸의 양식을 주시고자 하는 자를 믿어야 하는 것이 어제 복음의 결론이었다. 오늘 복음에서는 불멸의 양식이 무엇인지가 선포된다. 예수님께서 불멸의 양식을 추구하는 조건으로 불멸의 양식을 주는 자를 믿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믿음을 얻기 위한 기적을 요구한다.(30-31절) 그들은 모세와 예수님을 대립시켜 모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다 우리의 조상들을 먹이는(탈출 16,1-36; 시편 78,24; 지혜 16,20-29 참조) 기적을 보여주었는데, 예수님은 어떤 기적을 보여 믿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믿음을 위해 기적(奇蹟)을 청하고 있다. 사실 믿음이란 내심(內心)에 주어진 어떤 무엇에 대한 자유로운 응답(response)이다. 기적을 보고 믿는다면 그것은 기적이 믿음을 강요하는 셈이 되고 만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라. 그들은 항상 기적을 요구했고, 기적을 보고서야 믿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에 믿음이 강요당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참된 믿음이란 기적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유의지의 온전한 결단으로 성립된다. 군중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행사하기보다는 기적에 의존하려 하고 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빵의 기적과 비슷한 기적을 요구하고 있으니 결국 육적 세계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제 예수님의 부연설명이 이어진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다 조상들을 먹인 사람은 모세가 아니라 예수님 당신의 아버지라고 정정(訂正)하여 사람들의 오해를 풀고자 하신다.(32-33절) 예수님의 아버지는 다름 아닌 하느님이시다. 이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모세가 하늘에 청한 만나와 하느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빵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이 광야생활을 하는 중에 일용할 양식이 넉넉지 못함을 불평하자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만나와 메추라기를 양식으로 주신다.(탈출 16,1-36) 이 기록을 살펴보면 만나는 그야말로 하루의 양식이었고(안식일은 예외) 다음 날은 곰팡이와 구더기의 밥이었다. 그러나 오늘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려는 빵은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다.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그런 빵이 아니라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예수님께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늘의 빵을 청한다. 이에 예수님 스스로가 생명의 빵이심을 선포하신다.(34-35절) 이 언명(言明)은 더 이상의 설명이 아니다. 이는 선포요, 폭로(暴露)이며 예수님의 자기계시이다. 사람들은 앞서간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