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4월25일(수) - 부활 제3주간 수요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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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4월25일(수) - 부활 제3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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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04-27 조회수 : 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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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6,35-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복음산책] 스스로 기적이신 예수님 오늘 복음의 첫 구절인 35절은 어제 복음의 마지막 구절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이 구절을 반복한 이유는 이 구절이 요한복음 6장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빵’ 신학의 키워드(keyword)이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이 구절은 요한복음 전체의 핵심주제이며 예수님 자기계시의 코드(code)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늘의 빵을 청하자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가 ‘생명의 빵’이심을 선포하셨다. 예수님 스스로가 생명의 빵으로서 모든 생명의 허기짐과 타는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선포하신 것이다. 결국 생명의 빵을 얻기 위해서는 그분에게 가야하며, 그분에게 가는 것은 그분을 믿는 것이 된다. 믿음을 가지는 데 굳이 기적을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예수님 스스로가 기적이다. 예수님 스스로가 ‘생명의 빵’이라는 선포는 예수님 자신에 대한 결정적인 신적(神的) 계시(啓示)이며, 이 계시가 바로 기적인 것이다. 누구든지 이 기적을 본다면 ‘믿음’ 안에 안주하게 된다. 믿음에 이르지 못하면서 본다는 것은 ‘눈먼 것’과 같은 것이며, 나아가 죄가 될 수도 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 그러므로 기적 자체이신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이 생명의 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향정립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불신을 지적하신다.(36절) 이 불신(不信)은 당장 이 자리(카파르나움)에서 사람들이 드러낸 불신이라기보다 유다인들의 총체적인 불신을 의미한다. 유다인들이 믿음의 조건으로 기적을 요구한다면, 이미 충분한 기적이 전제되었다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이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지금까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계시하신 기적(표징)은 여럿 있었다. 실제적 상황으로 보도된 기적사화는 가나 혼인잔치에서의 기적(2,1-11), 고관아들을 치유한 기적(4,46-54), 벳자타 못가에서 행하신 중풍병자의 치유기적(5,1-18), 그리고 6장의 빵의 기적과 물위를 걸으신 기적이다. 그 외에도 예수께서는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셨다.(2,23 / 단순설명 형식의 보도) 이렇게 열거한 기적사화의 보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께서 행하신 각각의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께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됨을 알 수 있다.(6장 제외)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이나 말씀을 통하여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라는 표현이 요한복음에서만 읽을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믿게 되었다' 라는 표현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첫 번째 기적을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서 행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2,11)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뒤에야 이 말씀을 생각하고 비로소 성서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2,22) "예수께서는 과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머무르시는 동안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2,23) "그 동네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여자가 자기의 지난 일을 예수께서 다 알아 맞히셨다고 한 증언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4,39)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4,41)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8,30) "많은 사람이 거기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10,42) "마리아를 찾아 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11,45) 이에 비하여 공관복음서는 예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이나 가르침의 말씀 끝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반응에서 '믿게 되었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다음 사건보도로 옮겨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