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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전례에 대한 설명 - 광주대교구 전례위원회 작성

::: posted by : 김유환 요한 | posted on : 08/28/2021 | hit : 226 :::

https://youtu.be/ixchzrzOk7M

시작하는 말

미사는 잔치 형식을 통하여 주님의 십자가 제사를 재현하는 것입니다.

주 그리스도께서는 최후 만찬 때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사도들에게 당신을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고 명령하셨으며, 교회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구원 활동을 완수하시고자 언제나 교회에, 특별히 전례 행위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미사의 희생 제사 안에 현존하시고, '당신 친히 십자가에서 바치셨던 희생 제사를 지금 사제들의 집전으로 봉헌하시며', 집전자 안에 현존하시고, 특히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현존하십니다.

입당 행렬과 입당송(입당성가)

사제는 봉사자들과 함께 제대를 향해 입당행렬을 합니다. 이는 신자 공동체를 대표하여 주님께 나아가는 것으로, 신자들은 비록 행렬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행렬에 동참합니다.

이 때 입당송(혹은 입당성가)을 부르는데, 이 노래의 목적은 미사전례를 시작하고 함께 모인 신자들의 일치를 강화하며, 전례시기와 축제의 신비로 신자들의 마음을 이끌고, 신자들이 사제와 봉사자들의 행렬에 참여하게 하는 것입니다. 입당송은 <미사 고유기도문>에 제시되어 있으며, 대부분 전례시기나 축일의 의미를 반영하는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읊거나 노래로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날 거행하는 전례시기에 맞는 성가를 가톨릭 성가책(주교회의 인준)에서 선곡하여 부를 수 있습니다. 입당성가는 입당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끝까지, 아니면 적어도 2~3절까지 충분히 부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제대인사

사제와 봉사자들은 제단에 이르러 제대에 존경의 표시로 깊은 절을 합니다. 그리고 사제는 제단에 오른 후 제대에 깊은 절을 하게 되는데, 이는 미사의 제정자이시며 잔치의 주인이신 대사제 그리스도께 드리는 인사이자 공경의 예(禮)입니다. 사제는 이 예를 신자공동체를 대표해서 행하는 것이며, 신자들은 내적으로 사제의 이 예에 함께 동참하게 됩니다.

제대는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원의 제사를 기념하는 제사상이자, 하느님의 백성이 성찬을 거행하는 주님의 식탁으로 미사전례의 중심 입니다. 또한 제대는 '살아있는 돌'(1베드 2,4) 이며 '모퉁잇돌'(에페2,20)이신 그리스도의 상징이므로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돌로 고정시키며, 이동 제대로 대치할 경우에는 그 재료가 튼튼하고 고상해야 합니다.

분향 및 제대장식

제대 인사 후 사제는 좀 더 성대한 인사로 제대에 분향할 수 있는데, 분향은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 올리는(자신을 태워버리는 사랑) 공경과 기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시편 141,2 : 묵시 8,3 참조). 사제는 분향 전에 향로에 향을 넣으며 아무 말 없이 십자표시로 축복한 다음, 제대를 한 바퀴 돌면서 향로를 흔들어 분향합니다. 제대 주위에 십자가가 놓여 있을 때에는 제대보다 먼저 십자가에 분향하며, 사제가 십자가 앞을 지날 때 십자가를 향해 분향합니다.

미사 전례를 경건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제대 위에는 세상의 빛(요한 8,12)이며 부활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촛불을 켜둡니다. 촛불은 전례등급에 따라 둘이나 넷 또는 여섯 개를 켜두며, 주교가 미사를 집전할 때는 그리스도를 대변하며 칠성사를 집전한다는 의미로 일곱 개의 촛불을 켜놓는 것이 관습입니다. 촛불 외에도 제대 위에 십자가를 둘 수 있지만, 성당 전면에 십자가가 있을 경우, 별도의 십자가를 놓지 않습니다. 촛불과 십자가 외에 미사 시작 때에는 제대 위에 아무것도 놓지 않으며, 미사 전례서와 성작, 성합 등 다른 성구는 주수상에 놓아두었다가 성찬 전례를 시작하면서 제대에 갖다 놓습니다.

시작권고

미사를 시작하면서 주례 사제와 교우들은 성호경을 긋는데, 이때 교우들은 세례성사를 기념하고, 미사를 봉헌할 마음을 다지며 “아멘”이라고 응답합니다.

이어서 사제는 교우들을 향하여 팔을 벌려 인사(포옹하는 행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몸짓)를 하게 되는데, 이 인사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총이 교우들과 함께 있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미사 통상문에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등 네 가지 양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인사에 대한 대답인 “또한 사제와 함께”는 미사 안에, 특히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고 계시다는 신앙을 표현합니다.

이어 사제는 미사를 집전하는 주례자로서 참회 예식에 들어가기 전, 그날 미사에 대하여(미사의 주제, 해당 축일에 대한 간략한 설명, 특별한 지향 등) 간단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참회예식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3-24)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1요한 1,8-9)

참회예식은 권고, 침묵, 고백, 사죄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먼저 사제는 미사 통상문의 권고문(“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시다”)이나 자유롭게 꾸민 권고문을 공동체에 전합니다. 그러면 공동체는 침묵 중에 자신들의 죄를 반성합니다. 이때 사제는 침묵 시간이 너무 짧아 의미 없는 요식행위에 그치지 않도록, 시간을 넉넉히 주어야 합니다.

이어서 공동으로 죄를 고백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청원하는데, 미사통상문에는 세 가지 양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공동고백이 끝나면 사제의 사죄경이 따르는데, 이는 고해성사와 같은 성사적인 사죄 효력은 없지만, 작은 죄를 사해주는 전례적인 사죄 효력은 지니고 있습니다.

주일에는 참회예식 대신에 이미 받은 세례를 상기시키는 의미에서 성수를 공동체에 뿌리는 ‘성수예식’을 거행할 수 있습니다.

자비송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환호이며, 주님의 자비를 간청하는 노래입니다 (사제와 공동체가 교대로 노래하거나, 낭송하기를 권장합니다).

- 예수님께서 질병, 마귀, 죄와 죽음을 지배하신 행위(마태 8,2; 14,30; 15,21-28; 요한 11,17-27)는 주님으로서의 권능을 드러내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인류 역사전체의 관건과 중심과 목적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으며,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궁극의 토대를 두고 있다고 고백합니다.”(사목헌장 10항) 

- 우리는 매일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늘 같은 죄를 되풀이하는 처지이므로, 자비로운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매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 저의 죄악을 제가 알고 있으며 저의 잘못이 늘 제 앞에 있습니다. (시편 51,3-5) 

예리코의 소경 바르티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 10,46-52) 하고 주님의 자비와 능력을 굳게 신뢰하고 외쳤던 것처럼, 같은 마음으로 자비송을 노래하거나 낭송합시다.

대영광송

- ‘천사 찬미가’로 불리기도 하는데,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밤에 천사들이 부른 찬미가로 시작하여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바치는 찬양과 신앙을 고백하는 노래입니다. 성령 안에 모인 교회가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찬양과 간청을 드리는 매우 오래되고 고귀한 찬미의 노래이기 때문에 일어서서 부릅니다. 사제 또는 필요에 따라 성가대가 시작하고, 공동체가 다함께 노래하거나 교우들과 성가대가 번갈아 노래합니다. 물론 축제의 기쁨이나 장엄성을 드러내기 위해 성가대가 단독으로 부르는 아름답고 웅장한 합창도 필요할때가 있겠지만, 전례의 공동체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신자 공동체가 함께 부르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합니다.

- 사순과 대림시기를 제외한 모든 주일과 대축일, 성대하게 지내는 특별한 전례 거행 때에 노래하거나 낭송합니다. 사순시기의 주일은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속죄하는 참회시기이고, 대림시기의 주일은 주님의 성탄을 기다리면서 경건히 기도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축제의 성격을 지닌 대영광송을 부르지 않는 것입니다.

본기도

사제가 공동체의 일원이면서도 주님을 대변하며 미사 중에 바치는 첫 번째 주례기도로서, “기도합시다.”라는 초대로 시작하여 교우들의 기도를 모아 바친다는 의미로 ‘모음기도’라고도 불립니다.

사제는 손을 모으고 “기도합시다.”라고 한 다음 신자들과 함께 침묵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는 공동체가 하느님 앞에 있음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간청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이 침묵 중에 해설은 하지 않습니다.

이후 사제는 팔을 벌리고 미사경문의 기도문을 명확히 정성껏 바치는데,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삼위일체적결문(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께)으로 마감합니다. 사제는 결문을 시작할 때 손을 모읍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기도의 내용에 마음을 결합하며 “아멘”(예, 그렇게 되소서) 이라고 응답합니다.

사제가 팔을 벌려 기도하는 자세는 로마 지하묘지의 벽화에 그려진 기도 자세로, 하느님께 몸과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십자가에서 인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바치신 주님을 상기시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제의 기도 자세는 주님께서 미사 전례 안에서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대사제이심을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성경봉독(말씀의 전례)

미사를 구성하는 두 부분(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중 말씀 전례가 시작됩니다. 제1독서 - 화답송 - 제2독서 - 복음 환호송 - 복음 및 강론 - 신경 및 보편지향기도 등으로 이어지는 말씀 전례의 흐름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주고받는 대화라 할 수 있습니다. 미사에서의 성경 봉독은 언제나 ‘독서대’에서 해야 합니다(제대나 해설대에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독서대’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말씀의 양식을 제공하는 말씀의 식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화답송과 보편지향기도도 독서대에서 바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독서자는 말씀을 봉독하러 독서대로 올라가고 내려올 때에 서두르지 않아야 하며, 말씀을 봉독할 때에도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다른 교우들이 잘 듣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 말씀을 명확히 발음하고 천천히 띄어 읽기를 잘해야 합니다. 따라서 독서자는 미사 전에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의 의미를 잘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이는 독서를 통하여 선포되는 말씀을 공경의 마음으로 들어야 하며, 독서자와 함께 말씀을 소리내어 읽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말씀을 내 생명의 양식으로 삼겠다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미사에서의 성경봉독은 전례일의 등급에 따라 그날의 전례와 조화를 이루어 선정됩니다. 모든 주일과 대축일에는 세 차례 성경을 봉독하는데, 첫 번 째 봉독은(제1독서) 구약성경에서(부활시기에는 사도행전), 두 번째 봉독(제2독서)은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제외한 부분에서, 세 번째 봉독(복음)은 복음서에서 선정합니다. 그리고 축일과 기념일, 평일에는 두 차례(독서와 복음) 봉독합니다.

교회는 성경의 말씀으로 공동체를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 3년 주기(가, 나, 다해)의 독서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3년에 걸쳐 신구약 성경의 거의 모든 부분을 미사 안에서 봉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3년 주기는 그 해의 연도 수를 3으로 나누어 1이 남으면 ‘가’해, 2가 남으면 ‘나’해, 3으로 나누어지면 ‘다’해로 구분합니다.

특별시기(대림, 사순, 부활, 성탄)를 제외한 연중시기 주일에는 3년 주기에 따라 마태오 복음서는 ‘가’해에, 마르코 복음서는 ‘나’해에, 루카 복음서는 ‘다’해에 봉독하며, 요한복음서는 부활시기 주일과 ‘나’해의 일부 시기(연중 17~21주일)에 봉독합니다. 또한 연중시기 평일 복음은 공관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카)를 1년 동안 주간별로 나누어 봉독하며, 독서는 2년 주기(짝수 해, 홀수 해)로 반복하여 봉독합니다.

화답송

성경봉독(1, 2독서)이 끝나면 독서자는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고,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합니다. 이는 성경봉독이 하느님께서 직접 들려주시는 말씀임을 강조하며, 신자들은 감사와 찬미의 마음으로 화답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움으로 하느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에 기도로 응답할 준비를 갖추는 의미로 '침묵'합니다.

화답송은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을 촉진하는 것으로, 과거 '층계송'(성경봉독과 구별하기 위해 독서대가 아닌 층계에서 노래를 불렀던 것에서 유래)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거의 대부분 시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독서의 내용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시기나 전례등급에 따라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요.).

묵상에 도움이 되도록 성가대가 시편 본문을 노래하고 신자들은 후렴을 노래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독서자가 독서대에서 신자들과 시편 본문과 후렴을 주고받으며 낭송할 수도 있습니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앞서 봉독된 성경과 연관된 성가로 대체할 수도 있습니다. 해설자는 '화답송' 하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복음환호송

‘화답송’(봉독된 성경말씀에 대한 묵상적 응답)과는 달리 복음 선포에서 직접 말씀하실 그리스도를 환영하고 찬양하는 공동체의 노래입니다.

사순시기를 제외하고는 '알렐루야'(유다교 전례에서 유래하였는데,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라는 뜻) 라는 환호와 일반적으로 복음말씀에서 선택한 구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노래는 모두일어나서 하는데, 성가대 또는 선창이 인도하며 상황에 따라(독서대까지 가는 행렬이 길어져 한 번 하는 것으로 부족할 때) 반복할 수 있습니다.

복음선포준비

말씀 전례의 정점으로 ‘독서’보다 최대의 경의를 표현합니다. 말씀의 형태로 우리 가운데 오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그리스도를 향한 경외심의 표현으로 ‘복음 환호송’을 할 때부터 모두 일어섭니다.

복음 선포자는 사제 혹은 부제입니다. 사제는 복음 환호송을 부르는 동안 먼저 자신의 부당함을 느끼며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 앞에 나아가 고개를 숙이고(감실이나 십자가를 향하지 않고) ‘준비기도’(전능하신 하느님, 제 마음과 입을 깨끗하게 하시어 합당하게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소서)를 합니다. 부제는 복음 환호송을 부르는 동안 주례사제에게 고개를 숙여 ‘축복’(축복하여 주십시오)을 청한 후 주례사제의 ‘강복’(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계시어 그대가 복음을 합당하고 충실하게 선포하기를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에 “아멘”이라 응답합니다.

주교가 주례하는 미사에서는 부제(혹 사제)가 주교에게 강복을 청합니다. 그리고 복음 선포자는 독서대로 이동합니다(장엄미사에서는 향을 피우거나 초를 앞세워 행렬합니다).

복음선포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

복음은 반드시 독서대에서 선포합니다(제대는 복음 선포의 장소가 아닙니다). 복음 선포자는 먼저 다른 때와는 달리 손을 모으고 신자들에게 인사(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며, 신자들은 “또한 사제(부제)와 함께”라고 응답합니다. 그리고 선포자는 “○○○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라고 말하며 복음서와 이마, 입술, 가슴에 ‘작은 십자성호’를 긋습니다.

이는 복음이 주님의 말씀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면서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이마), 고백하며(입술), 간직하여 실천하겠다(가슴)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신자들도 함께 “주님, 영광 받으소서.”라고 말하며, 이마와 입과 가슴에 작은 십자성호를 긋습니다. 향을 사용할 경우 선포자는 이때 향로를 복음서에 세 번 흔들어 분향한 후 복음을 선포합니다.

복음 선포가 끝나면 선포자는 독서 때와 같이 “주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하고, 신자들은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라고 환호합니다. 이어 선포자는 복음서에 절하면서 속으로 기도(이 복음의 말씀으로 저희 죄를 씻어주소서)를 바치는데, 이는 교회의 오랜 신심(그리스도의 말씀이 일으키는 구원의 힘에 대한 고백)을 반영한 것입니다.

강론

사제는 온순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세로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말씀이 사제의 생각과 감정 속까지 깊이 파고 들어가 사제 안에서 새로운 시각, 즉 “주님의 마음”(1코린 2,16)이 싹틀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제의 말과 선택과 태도를 통하여 복음이 그대로 반영되고, 선포되고, 증거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현대의 사제양성 26항).

사제의 임무는 하느님의 백성을 가르치는 신앙의 교사로서,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대한 참여자로서, 주교의 협력자로서, 구원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의 힘으로 신자들의 공동체를 모아들이는 일입니다. 사제에게 복음 선포는 지칠 줄 모르는 직무이어야 하며(마르 16,15 ; 사도 18,9-10), 그 중 첫째는 설교입니다. 설교는 결코 즉흥 연설이어서는 안 되며 연구와 기도로써 준비하여야만 합니다. 이 설교에서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 것이 강론입니다.

강론자는 인간의 말을 통해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성장시켜야 하므로 자신의 지혜가 아닌, 신앙의 지혜를 구체적인 생활환경에 적응시켜 설명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강론자의 설교와 그의 생활 사이에 일관성이 있어야 그 설교는 힘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교구사제 사목지침 7항).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32).

“강론은 설교의 여러 형식 중에서 탁월한 것으로 전례의 한 부분이며 사제나 부제에게 유보된다. 전례 주기를 따라 강론 중에 신앙의 신비와 그리스도교인 생활의 규범이 성경구절로 해설되어야 한다. 회중과 함께 거행하는 주일과 의무축일의 모든 미사 중에 강론을 하여야 하며 중대한 이유가 없는 한 이를 생략할 수 없다”(교회법전 제767조).

강론은 알아듣기 쉽고, 간결하고도 명료하고 솔직하면서도 시기에 알맞아야 하고, 복음정신에 뿌리박고 교회와 교도권에 충실하여 전교열에 찬 것이라야 합니다. 그 밖에도 희망에 차 있고 신앙을 북돋아 주며 평화와 일치를 길러주는 것이라야 합니다(현대의 복음선교 43항).

강론은 독서대에서 서서 하거나 주례석에서 앉아서(서품식) 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법에서는 주간의 평일에도 특히 대림시기와 사순시기 또는 어떤 경사나 흉사가 있을 때에 거행되는 미사들에서도 회중이 충분하면 강론을 하도록 매우 권장하고 있습니다.

평신도에게는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개별적인 경우에 유익하다면 짧은 강의나 증언이 허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론과 혼동될 수 있는 느낌을 갖게 해서는 안 됩니다. 강론이 끝나면 말씀을 되새기고 묵상할 충분한 침묵 시간을 갖습니다.

“사제는 말씀의 주인이 아니라, 말씀을 섬기는 사람입니다”(현대의 사제양성 26항).

신앙고백(신경)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 10,9-10)

주일과 대축일, 성대한 전례를 거행할 때 모두 서서 함께 노래하거나 암송합니다. 성경봉독과 강론을 통해 들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공동체의 응답이자 성대한 ‘아멘’입니다. 또한 세례 때 고백한 신앙을 새롭게 하며, 성찬전례를 거행하기에 앞서 합당한 내적 자세를 갖추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미사통상문에서 제시하는 신앙고백문은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하 니콘 신경)과 ‘사도 신경’ 두 가지입니다. 니콘 신경은 니케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에서 선포한 교의를 기본 내용으로 한 미사전례의 공식 신경이며, 사도 신경은 ‘고대 로마신경’(초대교회 세례문답)을 바탕으로 사도들로부터 전래되었다는 권위를 가진 신경으로서 미사 전례 안에서 자주 사용되지만 어디까지나 보충 역할을 하는 예비 신경입니다(때에 따라서는 사도신경을 외울 수도 있다). 따라서 단지 니콘 신경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항상 사도 신경만을 바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신경의 밑줄 부분(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에서는 고개를 깊이 숙여 강생의 신비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합니다.

보편지향기도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하느님 백성은 말씀전례를 마감하며 믿음으로 받아들인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고, 세례 때 받은 자신의 보편사제직을 수행하며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거룩한 교회를 위하여, 우리를 권력으로 다스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온갖 곤경에 짓눌리는 이들을 위하여, 모든 사람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전례헌장 53항), 직접 성부께 간청합니다.

주례자는 주례석에서 간단한 권고로 신자들이 기도하도록 이끌고, 맺는 기도로 마감합니다. 기도 지향은 독서대나 다른 적절한 곳에서 부제나 독서자 또는 해설자가 바치며,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이 차례로 하면 더욱 좋습니다. 지향의 내용들은 장황한 설명이나 논리적인 강의가 아닌 소박하고 단순해야 하며, 개인이나 단체의 선이 아닌 모든 이를 위한 보편적인 선을 표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지향에 대한 공동체의 응답은 미사통상문에서 제시하는 구절들 또는 침묵으로 할 수 있으며, 그 외 전례시기에 따라 다른 구절로도 응답할 수 있습니다.

예물준비기도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이때부터 성찬전례가 시작됩니다. 말씀전례의 집전 장소는 독서대이지만, 예물 준비 - 감사기도 - 영성체 예식 등으로 이어지는 성찬전례의 집전 장소는 주님의 식탁이며 성찬 제사의 중심인 제대입니다.

예물 준비가 시작되면 봉사자들은 성작 및 성작 수건, 성체포 등을 제대에 놓습니다. 이 때 사제는 신자들이 들고 온 예물(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축성할 빵과 포도주)을 받아 성체포 위에 정중하게 놓고, 빵(제병)이 담긴 성반을 들어 빵 축복기도(온 누리의 주 하느님…)를 바칩니다. 이어 사제(부제)는 성작에 포도주를 따르고, 물을 조금 섞으면서 조용히 기도합니다(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이 기도는 인성(人性)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신자 공동체와의 결합을 상징합니다. 그 다음 사제는 성작을 들어 잔 축복기도(온 누리의 주 하느님…)를 바칩니다.

이상의 두 예물 준비기도는 빵과 포도주가 하느님의 선물이고 땅의 열매이며 인간 노동의 결실임을 표시하고, 이러한 빵과 포도주를 주님께 되돌려드리면서 생명의 빵인 주님의 몸과 피가 되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마르 12,43)

사제는 허리를 굽히고 곧 바치게 될 제사가 주님의 뜻에 맞갖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주 하느님,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어 오늘 저희가 바치는 이 제사를 너그러이 받아들이소서”). 이어 사제는 정결의 기도를 바치고 봉헌하는 마음을 깨끗이 하는 상징으로 손을 씻습니다.

예물을 준비하는 동안 신자들은 봉헌성가를 부를 수 있으며, 이 때 교회는 오랜 관습과 미사의 기본정신에 따라 가난한 이들을 돕고 교회 운영에 필요한 예물(봉헌금)을 바칩니다. 신자들이 낸 봉헌금은 적당한 장소에 놓고 제대 위에는 놓지 말아야 합니다.

사제는 지금 바치는 이 제사가 하느님께 의합한 제사가 되도록 하자는 기도에로 신자들을 초대(“형제 여러분, 우리가 바치는 이 제사를…“)하면, 신자들은 일어서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고, 교회와 인류에게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화답(“사제의 손으로 바치는 이 제사가…”)합니다. 이후 제대에 진설한 예물을 주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참다운 제물이 되게 해달라는 청원인 ‘예물 기도’를 끝으로 예물 준비를 마무리합니다.

감사기도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1코린 1,4)

감사기도는 최후만찬 때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 잔을 들고 성부께 드리신 기도에서 유래합니다. 최후만찬 때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제는 교회와 공동체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감사와 찬양 및 간청의 기도를 바칩니다. 이 기도를 통하여 최후만찬 때에 주님께서 이룩하신 구원의 신비가 그대로 재현되며, 빵과 포도주는 주님의 몸과 피로 축성되고 성부께 봉헌됩니다.

이러한 기능과 역할로 말미암아 감사기도는 미사 전체의 중심과 절정을 이루는 기도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구조는 감사(대화와 감사송) - 환호(거룩하시도다) - 축성기원 - 성찬 제정과 축성문 - 기념환호(신앙의 신비여) - 기념과 봉헌 - 일치기원 - 전구 - 마침 영광송 순으로 이루어집니다.

감사기도는 공동체 전체가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이기 때문에, 주례사제는 반드시 소리 내어 바치며, 신자들은 믿음 안에서 침묵을 지키며 규정된 방식에 따라 사제와 일치하며 기도에 동참합니다(감사기도에 관한 시행 지침 2항 참조).

대화와 감사송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면 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콜로 1,3)

감사기도는 먼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 “마음을 드높이” 등으로 시작되는 사제와 신자들의 대화를 통해 모임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하신다는 의식을 상기시켜 주면서, 이어지는 감사기도를 합당하게 준비하게 합니다. 이때 신자들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다시금 확인하고 미사 중에 다소 흩어진 마음을 주님을 향하여 높이며 진정한 찬양과 감사의 마음으로 감사기도 전체를 바치는 사제의 기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감사기도의 첫 번째 부분에 속하는 감사송은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전례시기나 축일이 기념하는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되새기게 됩니다. 기도는 크게 전례시기에 따라 변하지 않는 서문(“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과 감사의 이유를 과거의 구원 사건, 성인들의 생애 등 시기와 축일에 맞춰 고백하는 본문, 그리고 감사의 표시로 기쁨의 노래를 부르겠다는 결문(“그러므로 하늘의 모든 천사와 함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이사 6,3)

감사송에서 기념했던 하느님의 구원 업적이나 그분의 본질에 대해 공동체가 천사와 성인들과 함께 부르는 찬미와 영광의 환호노래입니다.

이 환호노래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본 소명환시에 나오는 노래에서 따온 것으로, 하느님의 구원업적에 감사드림과 동시에 주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찬양합니다. ‘거룩하시도다’를 세 번 반복해서 부르는 것은 온전히 거룩하신 주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후반부(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 외쳤던 군중의 환호에서 따온 것으로,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께서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오심을 환영하고 찬양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상과 천상 공동체의 환호이기에 그저 입으로 외기 보다는, 공동체 전체가 함께 노래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성음악 훈령 29항 참조).

축성기원 / 성찬 제정과 축성문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4)

제대에 놓인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몸과 피로 변하게 해 달라고 성령께 청하는 기도입니다. 사제는 이 기도를 바칠 때 빵과 포도주 잔에 안수와 십자표시를 하는데, 이것은 성령의 강림과 축성을 기원하는 동작입니다.

이후 ‘성찬 제정과 축성문’을 바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최후만찬 때 빵과 포도주를 들고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를 통해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 거룩한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성찬 제정과 축성문은 감사 기도뿐 아니라 미사 전체의 핵심이며 절정이기에 사제는 이 기도를 바칠 때 허리를 조금 굽히고 그분의 동작과 말씀을 최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또박또박 정성스럽게 바쳐야 합니다.

성체와 성혈 축성이 끝날 때마다 사제는 성체와 성혈을 신자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높이 들어 올리며, 신자들은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실제로 현존하시는 주님을 바라본 후 깊은 절로 경배합니다.

26. 기념환호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 11,26)

성체, 성혈에 대한 경배가 끝나면 사제는 ‘신앙의 신비여!’ 라고 말하고, 신자들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라고 환호합니다. 이 기념 환호는 방금 이루어진 축성과 봉헌에 대한 공동체의 기쁨과 감사의 환호이자 믿음의 고백입니다.

기념 환호의 양식은 세 가지가 있으며, 이 양식들은 서로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성찬 제정을 통하여 이루어진 주님의 구원 업적을 공적으로 기념하고 고백하며 선포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일생 동안 행한 구원 사업이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됨으로써 완성된 사실과, 부활하신 주님이 언제나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사실을 잘 나타냅니다. 곧, 하느님 나라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긴박감과 함께, 나아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증거하겠다는 종말론적 신앙의 자세를 이 한마디의 말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27. 봉헌기도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성체성혈 축성 자체로 이미 희생제물의 봉헌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별도의 봉헌기도로 제물이신 그리스도를 자신과 함께 봉헌합니다.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봉헌하나이다”(제2양식); “거룩하고 살아있는 이 제물을 아버지께 봉헌하나이다”(제3양식).

이 봉헌의 의미에 관해 「미사총지침」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교회, 특히 지금 한자리에 모인 공동체는 이 기념제로써 티없는 제물을 성령 안에서 성부께 봉헌한다. 교회는 교우들이 흠없는 제물만 바칠 뿐 아니라 자신도 바치는 것을 배우기를 바란다. 그리고 중재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또한 이웃과도 나날이 더욱 완전히 일치하여, 마침내 하느님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란다”(55항 6절).

성찬례에 참여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거룩하고 산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자신을 남김없이 하느님 뜻에 맡기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서 성장하며, 자기 삶의 십자가를 그리스도와 함께 지고 가며, 자기의 영혼 구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뜻합니다.

28. 전구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

전구(轉求)란 기도자가 다른 산 이나 죽은 이를 위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빌어주는 기도를 말합니다. 미사는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성사입니다. 이러한 미사 중에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만민을 위한 ‘보편적(Catholic) 교회’라는 특징을 살려 교회와 그 모든 구성원, 미사에 참여한 공동체와 그밖의 사람들, 그리고 죽은 교우들과 다른 죽은 이들을 모두 전구의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교회는 단지 세례받은 신자들만을 위한 폐쇄적인 종교단체가 아니라 만민을 위한 구원의 성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구 중에는 교회가 허용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개인이나 단체의 이름을 부르지는 못합니다. 교회가 허용하는 경우는 장례미사와 위령미사, 세례·견진·서품·혼인·서원·동정녀축성 등의 예식미사를 거행할 때입니다. 이들 미사에는 특정인을 위한 특별기도가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29. 마침영광송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요한 17,4)

감사기도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노래인 “마침 영광송”으로 끝납니다. 감사기도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구원업적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는 기도이기에 그 구원의 주역이신 천주 성삼께 감사를 드리는 감사송으로 시작하여 영광송으로 마감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교회는 자신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지만 그러한 영광은 그토록 자비를 베푸신 하느님께 더없이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자신의 머리이시자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하나되어 영광을 드립니다.

사제가 마침 영광송을 바치면 교우들은 “아멘(히브리어: 그대로 이루어지소서)”으로 응답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사제의 영광송에 동의할 뿐 아니라, 감사기도 전체에 대해서도 동의하고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사제와 일치하여 감사기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였음을 표시합니다. 이러한 의미와 중요성을 감안하여 교우들은 이 환호를 그냥 외지 말고 성대하게 노래로 불러 성부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30. 주님의 기도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그리스도교의 가장 대표적인 기도입니다(마태 6,9-13). 초세기 사도들의 가르침인 「디다케」는 날마다 세 번 주님의 기도를 바치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초세기 교부들은 주님의 기도의 “일용할 양식”을 성체와 연결시켜 성체를 날마다 구원의 양식으로 받아 모시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기도는 가장 적합한 영성체 준비기도로 간주되어 4세기경부터 미사에 도입되었습니다. 기도문 가운데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도 합당한 영성체를 위한 훌륭한 청원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마지막 두 간청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와 “악에서 구하소서”는 영성체 후를 미리 내다보고 은총과 보호를 청하는 기도가 됩니다. 악의 유혹에 대한 가장 철저한 대비책은 세상의 모든 악을 무찌르고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받아모시고 그분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주님의 기도는 감사기도에서 청하고 실현된 모든 것을 종합하는 가장 완전한 영성체 준비기도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미사뿐 아니라 성체를 영하는 모든 예식의 핵심적인 준비기도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31. 평화의 예식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

 주례사제는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시고 이룩하신 평화를 청하는 기도를 바친다. 여기서 청하는 평화(샬롬)는 단순히 전쟁과 투쟁이 없는 평화나 세상이 줄 수 있는 그런 평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 평화는 예언자들이 예고한 것과 같이 미래의 구원자, 메시아께서 이룩하실 평화이다(이사 9,6; 52,7) 그리고 이 평화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서 당신 수난과 부활로 완성하신 구원에서 흘러나오는 평화, 하느님과 인간 및 인간 상호간의 일치와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평화를 말한다.

 사도시대에는 교우들의 사랑과 화해의 표시로 서로 입을 맞추는 것이 관행이었다(로마 16,16; 1베드 5,14). 중세기를 거치면서 사회관습의 변화에 따라 포옹, 악수, 고개를 숙이는 인사 등으로 다양하게 변하였다. 한국주교회의가 정한 규정은 “서로 목례나 합장, 악수 등으로 알맞게 인사를 나누며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한다”로 되어 있다.

 평화의 인사가 단순히 의례적인 인사로 끝나면 별 의미가 없다. 이 인사는 무엇보다도 교우 상호간의 진정한 사랑과 화해와 일치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32. 빵 나눔과 섞는 예식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고린 10,17) 

빵을 나누는 행위는 그리스도께서 최후 만찬 때에 행하신 것으로서 사도들 시대에는 미사 전체를 ‘빵의 나눔’이라고 불렀다(사도 20,7.11). 이는 우리 모두가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모심으로써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을 표시한다. 축성된 빵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나누어진 빵을 먹는 이들은 그분의 생명에 참여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체성사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표현대로 “일치의 표시이며 사랑의 고리”이다. 

사제는 축성된 빵을 나눈 다음 그 작은 조각을 성작 안에 넣으며 기도한다. 고대 시리아의 증언에 따르면 “빵과 포도주를 따로 축성하는 것은 육과 영이 갈라진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고, 이렇게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섞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그분의 몸과 피가 일치함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렇게 일치된 성체성혈이야말로 교우들에게 더욱더 완전한 불멸의 양식이 된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교우들이 성체만을 모시더라고 성체가 성혈과 섞였기 때문에 성체성혈을 함께 영하는 양형성찬의 상징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느님의 어린양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이스라엘 사람들은 선조들이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에서 탈출하여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과월절(파스카) 축제를 지낸다. 축제 때 하느님께 바치는 어린양은 탈출 당시 열 번째 재앙인 맏배의 죽음을 피하고,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될 때 희생된 어린양을 상기시킨다(탈출 12,1-14 참조). 

“하느님의 어린양”은 요한 세례자가 예수님께 붙인 칭호이며(요한 1,29 ; 1,36), 묵시록에서도 죽임을 당하고 자기 피로 값을 치러 만백성을 구원한 어린양 찬미가를 전한다(묵시 5,8-12 ; 13,8). 바오로 사도 역시 그리스도를 “파스카의 어린양으로 희생되신 분”이라고 고백한다(1고린 5,7). 

여러 조각으로 나뉘는 빵은 단순한 빵이 아니라 파스카의 어린양으로서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자신이며, 이러한 어린양께 묵시록의 원로들처럼 찬양을 드리면서 그분의 자비를 간청함으로써 주님을 합당하게 모실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엠마오의 제자들이 낯선 나그네가 빵을 나눌 때에 그가 주님임을 알아보았듯이, 신자들도 사제가 빵을 나눌 때에 그 빵이 부활하신 주님임을 믿어 고백하고 그분의 자비를 간청한다.

34. 영성체 I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54) 

예로부터 영성체는 사제와 교우들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성찬의 초대자가 그리스도 자신이며 사제는 봉사자로서 그분의 직무를 대리하기 때문이다. 사제가 교계제도 안에서 평신도보다 지위가 높아서 우선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미사전례를 집전하고 교우들을 이끄는 주례이기 때문에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 이 경문은 비록 짤막하지만 최후만찬 때에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 “이는 내 몸이다”를 반영하는 가장 성서적인 말씀이다. 

교우들은 여기에 “아멘”하고 응답함으로써 빵의 형상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그분의 희생에 동참할 것을 다짐한다. 교우들은 영성체를 통하여 주님의 구원제사에 더욱 완전하게 참여하고, 주님 및 형제들과 일치하며,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다. 그러므로 큰 죄를 지었거나 오랫동안 신앙을 등지고 산 신자들은 먼저 화해성사로 자신의 죄를 깨끗이 씻어야 한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화해성사를 보지 못했을 때에는 빠른 시일 내에 성사를 보겠다고 결심하고 내적 참회를 한 다음에 영성체를 해야 한다.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고린 11,26)

 교우 영성체의 본 형태는 초세기부터 손 영성체였다. 9세기경부터 반신불수 등 손 영성체가 불가능한 병자들을 중심으로 입영성체가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교우들이 성체를 손으로 받은 다음 즉시 모시지 않고 집으로 모셔가 미신행위를 하는 경우들도 있었고, 손으로 영할 때보다 입으로 영할 때 성체 부스러기를 땅에 떨어뜨릴 염려가 없기에 점차 손 영성체가 사라지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 손 영성체가 부분적으로 허용되어 불과 몇 년 사이에 대부분의 교회에서 손 영성체를 하게 되었다.

 양형영성체는 성체를 빵과 포도주 두 형상으로 영하는 것으로 초대 교회 때부터 실천하였다. 12세기부터 신자들이 성혈을 가끔 흘리는 등 사목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양형영성체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정된 현행규정에 따르면 적절한 교리교육을 전제로 하고서 주교의 판단에 따라 세례, 견진, 혼인, 서품, 서원, 독서직과 시종직, 선교사의 파견, 병자성사거행의 미사나 예식 때에, 피정미사, 은경축과 금경축미사, 새사제의 첫미사 때에 양형영성체를 할 수 있다. 또한 주교는 어느 공동체나 신자 집회의 영신생활에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양형영성체를 허락하게 할 수 있다.

36. 침묵기도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마태 14,23) 

성작과 성반을 닦은 다음 사제는 주례석으로 가서 앉아 교우들과 함께 잠시 침묵 가운데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 이때 침묵은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며 기도하는 침묵으로서, 모든 이가 잠시 영성체와 미사 전체의 은혜에 감사하고 자신 안에 오신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사제와 교우들은 이 침묵기도를 소홀히 하지 말고 진정으로 주님께 감사드리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해야 한다. 

미사 중에 몇 차례의 침묵 시간이 있지만 그 위치나 의미로 보아 영성체 후의 침묵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침묵을 생략하거나 지나치게 짧게 하거나 묵상안내, 악기연주 등으로 묵상을 방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로마미사총지침」에는 침묵 대신에 성가나 시편을 공동체 전체가 노래할 수도 있다고 되어 있지만 한국 지침에는 이 내용이 삭제되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는 침묵기도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성가를 삭제한 것이다.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치기 전인 이때에 공지사항이나 여타 다른 사목적 행사를 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왜냐하면 영성체 후 기도를 통하여 성찬 전례가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37. 영성체후 기도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갈라 5,22) 

침묵기도가 끝나면 사제는 주례석이나 제대로 가서 팔을 벌리고 ‘영성체 후 기도’를 바친다. 이 기도는 ‘본기도’, ‘예물기도’와 함께 주례기도에 속하며, 이미 4세기부터 미사의 고정요소가 되었다. 

4세기의 교부 히뽈리또의 저서 「사도전승」은 영성체 후에 부제가 기도권고를 하면 주교가 영성체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거룩한 생활을 위한 간청을 드린다고 전한다. 

이와같이 영성체 후 기도는 방금 영성체를 통해 받은 은혜와 미사 전체에 대한 공적인 감사기도이자 방금 거행한 미사의 신비가 생활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맺어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누릴 수 있도록 은총을 비는 간청기도이다. 

그러므로 주례사제는 되도록 천천히, 그리고 명확히 낭독하여 모든 교우들이 마음으로 함께 기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기도의 구조는 본기도와 같이 기도권고, 침묵, 기도, 아멘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기도와는 달리 끝부분은 짧은 마감형식이다. 

이 기도로 영성체예식, 나아가 성찬전례를 모두 마치게 된다.

38. 강복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루카 24,50-51) 

사제는 미사 시작할 때와 같이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 마침인사를 한다. 이 마침인사는 미사 중에 말씀과 성찬을 통해 신자들 안에 오시어 구원 은총을 베풀어 주신 주님께서 삶 속에서도 계속 그들과 함께 계시기를 기원하는 인사이다. 그런 다음 사제는 신자들을 향해 성호를 그으면서 축복한다. 이런 축복이 미사에 들어온 것은 중세 후기이다. 그전에는 미사를 마친 주교가 퇴장하면서 신자들을 축복하였고, 10세기를 전후해서 이 축복은 미사 마침부분에 들어왔지만 주교만이 할 수 있었다. 

강복양식은 단순강복, 장엄강복, 백성을 위한 기도 세 가지가 있다. 특별한 날이나 특별한 기회에 사제는 단순강복 대신에 장엄강복 내지는 백성을 위한 기도를 바칠 수 있다. 장엄강복 때 부제(사제)는 먼저 강복받기 위해 무릎을 꿇거나 또는 고개를 숙이도록 권유한다. 그런 다음 사제는 공동체 위에 팔을 펴들고 삼위일체의 기도를 말하고,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라는 강복청원으로 마친다. 

백성을 위한 기도에서는 “전능하신 천주 … 저희를 강복하시어 언제나 저희 곁에 머무소서”라는 강복양식으로 끝맺는 스물여섯 개의 기도 중 하나가 따라온다.

파견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강복 후에 사제나 부제는 손을 모으고 교우들을 파견하면서 말한다 :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그러면 교우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응답한다.

파견의 말은 간단하나 의미는 매우 중대하다. 즉 미사에 참여한 교우들이 각기 주님을 찬미하며 자기 일을 착하게 하도록 파견되는 것이다(미사경본총지침 57항).

미사 중에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결합되었다. 즉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새로이 정신 무장이 되었다. 이제 세속에 나가서도 유혹이나 악에 물들지 않고 그리스도의 정신 곧 복음을 전한다는 사명을 받은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미사가 끝났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신자의 기본 사명이 세 가지라고 하였다. 믿음을 축하하고 믿음을 살며 믿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믿음의 축하인 미사는 끝났지만 믿음의 삶인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고, 믿음의 증거인 복음전파와 생활한 순교가 생활 가운데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를 덧붙였다. 나머지 사명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미사 얼마나 아십니까] 미사의 신학적 의미1

 

 

전례헌장 47항은 "우리 구세주께서는 팔리시던 그 밤에 최후만찬에서 당신 몸과 피의 성찬의 희생 제사를 제정하셨다. 이는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의 희생제사를 세세에 영속화하고, 또한 그 때까지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에 당신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를 맡기시려는 것이었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이고 일치의 표징이고 사랑의 끈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어,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우리가 미래 영광의 보증을 받는 파스카 잔치이다"라고 미사의 의미를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성찬제정 후 "너희는 나를 기념하여 이 예를 행하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미사가 주님의 기념제임을 뜻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주님은 무엇을 기념해야 되는가를 밝혀 주셨다.

 

 

1.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기념제

 

먼저 빵을 주시면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인간을 위해서, 인간을 대신해서 생명을 바친다는 뜻이다. 즉 이 빵에 대한 말은 구약, 신약을 통해 인류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주님을 음식을 통해 먹으며 기념하라는 것이다.

 

다음에 잔에 대한 말씀으로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이다"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인류 전체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피, 그 분 자체를 마시며 기념하라는 것이다. 결국 빵과 잔에 대한 말씀의 의미는 인류의 죄를 대신 속죄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인류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사는 주님의 죽음의 기념제일 뿐 아니라 또한 부활의 기념제인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과 부활은 동일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 동일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활을 생략하고 죽음만 가르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기념제를 교회에서는 '제사'(Sacrificium)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봉헌 방법이 다르지만 십자가의 제사와 동일한 것이다.

 

미사가 제사라는 것은 신약, 교부시대, 트리엔트 공의회까지 내려오고 오늘날까지 기본 교의가 되고 있지만 오해의 여지 때문에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특히 중세기에 들어오면서 극히 좁은 의미의 제사로 이해되어, 미사를 동물이나 곡식을 바치고 그 대신 하느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는 구약제사와 같은 관점에서 보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제사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고 그분의 뜻을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그분의 제사는 단순히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만이 아니고 출생, 공생활, 수난, 죽음, 부활을 포함하는 전 생애를 하느님께 바친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런 뜻에서 미사는 제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사를 바친다고 하는 의미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전 생활을 하느님께 바치고 그분을 위해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가톨릭신문, 2004년 3월 7일, 정의철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

[미사 얼마나 아십니까] 미사의 신학적 의미2

 

 

2. 미사는 파스카의 잔치

 

이스라엘 민족은 기원전 1250~1200년경에 하느님의 특별한 도우심으로 에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었으며, 매년 이 해방절을 만찬을 통해 기념하였다. 우리 교회는 처음부터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새로운 완전한 해방 사건으로 간주하여 미사를 파스카 만찬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지낸 파스카 축제가 해방의 기쁨을 새롭게 하는 동시에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상기하는 행사인 것처럼 미사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최후의 만찬에서도 계약의 개념이 분명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의 미사 거행은 새로운 계약체결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사 때마다 새로운 계약을 하느님과 맺고 우리 자신의 신분과 사명을 다짐해야 한다.

 

 

3. 미사는 친교와 식사의 나눔

 

성서에서 최후만찬이 '주님의 만찬', '빵의 나눔', '주님의 식탁' 등의 명칭으로 쓰인 것을 보더라도 또한 최후만찬의 절차, 재료, 상황 등으로 보아도 식사예식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미사에서 식사의 의미를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한 상에서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 식사 공동체는 일치, 사랑, 용서, 화목을 반영하기에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도 각계 각층의 부류와 같이 식사하심으로써 그들을 용서하고 화해시키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식사를 인간들의 일반적 의미 이상으로 하느님과의 나눔의 장으로 이용하셨다.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 전체를 수직, 수평적으로 참다운 관계로 만드심이 주님의 지상과제인데 바로 이것을 미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내셨다. 즉 예수님은 우리에게 살과 피를 주심으로 당신과 한 혈육, 한 가족이 되게 하신 것이다. 바울로 사도는 바로 이러한 미사 안에서의 친교의 의미를 고린토 전서 10,16-17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축복의 잔을 마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가 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빵은 하나이기에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미사의 신학적 의미를 살펴보면서 알 수 있었듯이 미사는 제사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파스카의 잔치', '친교와 식사의 나눔'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지금껏 우리는 미사의 이러한 여러 가지 의미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어느 한 부분에만 중점을 두면서 미사에 대한 의미를 찾으려 하였던 측면이 있다. 우리는 미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짐으로써 미사를 통해 우리의 전 생활을 하느님께 바치고 그분을 위해 생활하겠다는 지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미사와 삶, 즉 우리의 실생활과 연결될 때만이 미사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신문, 2004년 3월 14일, 정의철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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