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뭐 있나요!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 복음 묵상

복음 묵상

[] 인생, 뭐 있나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작성일 : 2010-09-09 조회수 : 2,182

본문

*** 중앙일보 미주판 '사목의 향기' (2010.9/8, 9/15)코너에 기고한 글입니다*** "인생, 뭐 있나요!" "인생, 뭐 있나요!" 얼마 전 신부들 모임에서 이런 저런 의견이 엇갈릴 때, 결국 뜻을 모으고는 웃으면서 한 말입니다. 인생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이 묻어나는 푸념 같은 이 표현은, 동시에 굴곡진 인생의 심오한 깊이를 깨달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인생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는 지혜가 담긴 표현으로도 느껴졌습니다. 인생의 푸념과 본질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는 이 표현의 매력에 빠져 입버릇처럼 사용했던 기억이 납니다. '푸념'이 패배자의 것이라면 '인생 뭐 별거 없다지만 그래도 참 좋은 것이다'라며 살아가는 이들은 삶의 주인공들입니다. 각자 인생에 있어서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경우가 어디 있냐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사실은 조연 혹은 엑스트라로 살아가면서 주연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엑스트라라고 비관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내 인생의 주연이 되느냐 엑스트라가 되느냐는 내가 가진 훌륭한 출신성분이나 학력이나 재력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내가 이 사회에 얼마나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얼마나 높은 인지도를 지니고 있다거나 사회에 대한 기여도나 공헌도가 높다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사회의 지도층은 주연이고 일반 서민들이나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엑스트라들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럼 각자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를 가정해봅시다. 그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의 핵심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 문제가 정말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아야지 부수적인 것에 매달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결코 올바른 해결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부수적인 것은 해결되었다 해도 여전히 그 문제는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엇이 인생일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결국 인생을 인생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 이것을 인생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그 본질을 깨닫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 때 각자는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인생의 비본질적인 부분, 즉 부수적인 것들에 집착해서 살아간다면 자기 인생의 엑스트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중요한 것들로만 채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인생은 본질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것들, 부수적인 것들과 함께 이루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히 '인생을 헛되이 살았다'라는 표현을 듣게 됩니다. 인생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비본질적인 면을 붙잡고 시간을 허비했다는 뜻일 겁니다. 허무한 생각이 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옷을 잘 차려입고 거울 앞에 서면 멋져 보입니다. 멋진 장신구를 달면 더 멋져 보입니다. 이렇게 치렁치렁 장신구들로 자신을 꾸며도 그 순간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장신구들처럼 아름답지 못한 나의 인생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화려한 배역을 맡았던 연극배우가 화려한 의상을 벗고 화장을 지우고 거울 앞에 앉아서 현실을 보는 느낌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인생에 대한 허무함은 이런 느낌일 것입니다. 화려한 명품들로 자신을 꾸밀 수는 있지만 나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나'는 본질이고 나를 치장하는 갖은 명품들은 나의 액세서리에 불과합니다. 인생의 허무함은 본질이 아닌 액세서리에 치중함에 있습니다. 온갖 명품으로 치장한다 해도 명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위해서, 인생의 진정한 명인을 꿈꾸며 '인생의 본질' 문제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그 본질의 문제를 들여다봅시다.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각자의 체험과 가치관에 따라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지만 본질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 본질이 무엇이냐고요? 그 답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참다운 가치들이 있습니다. 거짓, 오류, 속임수, 위선, 이런 것들 보다 진리가 올바른 가치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미움, 증오, 질투, 시기, 이런 것들 보다 사랑이 올바른 가치란 것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을까요. 자기에게로만 향하는 이기적 사랑, 말뿐인 사랑, 이런 것들 보다 타인을 향한 사랑, 실천하는 사랑이 올바른 사랑이란 것을 우리는 다 압니다. 그래서 봉사란 사랑의 참된 이름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진리, 사랑, 봉사, 이런 가치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다 아는 이 길을 왜 우리는 따르지 못할까요? 우리가 이 길을 걷기가 힘든 이유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 대가가 두려울 뿐입니다. 진리의 길이 무엇인지 알지만 실천하기 힘든 이유는 진리를 선택함으로써 내가 치러야할 경제적 손실이 두려운 때문입니다. 사랑을 베푼다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육체적 고달픔을 감수해야한다는 것이 싫을 따름입니다. 봉사의 삶이 보람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의 시간을 나눔으로써 내가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른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진다면 내가 치러야 했던 경제적, 육체적, 시간적 손실이, 내가 놓쳐버린 소중한 가치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매번 깨닫게 됩니다. 지나간 시간을 반성해봄으로써 내가 눈감아버린 진리의 길을, 내가 놓쳐버린 사랑실천의 시간을, 내가 외면한 봉사의 기회를 다음 기회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인생이란 각자에게 단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지만 반성하는 자에게는 매번 새로운 출발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요. 부족한 자신의 과거를 다시 들추는 일은 누구에게나 심난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심난함이 새로운 생명을 향한 애벌레의 몸짓이라면 그 엄청난 축복을 거절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반성을 통한 새로운 탄생과 정신적인 가치들에 대한 추구, 이것이 인간다운 삶입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그래서 인간이기 위하여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삶이 의미 없게 느껴지고 지루하게 다가올 때는 인간이기를 소홀히 했기 때문 일겁니다. 물질의 가치를 숭배하는 자들은 과학의 발전이, 물질의 풍요가 인생의 질을 높인다고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경험했습니다. 인간은 정신적, 영적인 가치를 추구할 때 가장 인간적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다운 삶을 깨달은 이는 신앙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가장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치로 인간만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공동체는 최선을 다하여 인간이고자 하는, 그래서 인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며 새 생명에 대한 갈망, 인류가 귀중하게 여겨온 정신적 가치들, 즉 진리 사랑 봉사를 실천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참다운 인간들의 공동체입니다. 결국 신앙은 나약하거나 과학적 사고를 지니지 못한 자들의 도피처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필수이며 인생의 본질을 깨달은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인생, 뭐 있나요. 우리가 다 아는 거, 생각 한번만 더 해보면 안할 수 없는 거, 그거하면서 사는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