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3월8일(주일) - 사순 제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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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2주일 -나해 [오늘의 복음] 마르 9,2-10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2)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3)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8)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복음산책] 십자가의 길 - 나를 변화시키는 길 우리 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의 40일간 인류구원을 위한 공생활 준비로서의 광야생활을 묵상하고 본받아 더 열심히 그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고, 더 기쁘게 그분의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 회개와 속죄의 사순시기를 시작했다. 오늘 사순 제2주일을 맞이하고 보니 사순(四旬) 중에 벌써 일순(一旬)을 보내고 말았다. 오늘 주일에 미사전례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에 관한 복음을 들려준다. 이 복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간 대목을 살펴보아야 한다. 공관복음서가 예수님의 같은 행적과 가르침을 근거로 제각기 저자의 독창적 구상을 따라 전개되고 있지만, 오늘 복음의 도입부는 거의 같은 순서를 따르고 있다. 그것은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 -> ‘수난과 죽음,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 ‘참된 예수 추종의 길’ ->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의 순서이다.(마태 16,13-17,9; 마르 8,27-9,10; 루카 9,18-9,36) 이렇게 전개하는 순서는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마태오는 마르코의 원전(마르 9,2-10)을 베끼면서 베드로와 제자들의 위상(位相)에 흠집이 날만한 구절들, 예를 들면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6절)는 대목과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10절)는 부분을 삭제해 버렸다. 마태오와 마르코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자신의 변한 모습(얼굴과 옷)을 보여주었다고 하는데, 루카는 이들을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모습이 변했다고 기록함으로써 저자 특유의 의도를 살리고 있다. 아무튼 예수님의 일행은 갈릴래아 호수 주변의 여러 마을을 두루 다니시다가 필리피의 카이사리아에 도착한다. 이곳은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필립보가 세운 도시로서 갈릴래아 호수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곳이다. 여기서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아)로 고백한다. 그러나 이 고백이 ‘반쪽 메시아’라는 것을 아셨다. 나머지 반쪽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고난과 역경, 배신과 배척, 처절한 죽음으로 엮어진 십자가의 길에 있음을, 그리고 자기 목숨을 잃음으로써 다시 얻는 부활에 있음을 애써 가르쳐주셨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세 차례에 걸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예고를 통하여 자기들이 고백한 메시아가 어떤 길을 가야하는 것임을 알아야 했고, 그 길이 곧 자신들 또한 가야할 길임을 알아야 했다. 예수님은 메시아이시지만, 사람의 아들로서 고통 받고 죽어야 하며, 그러나 다시 부활하여 하느님 지존의 영광을 드러내는 주님으로 우뚝 서게 되실 것임을 제자들에게 순서대로 가르쳐주셨던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스승이 그런 십자가의 길을 가야한다니 좋아하고 반겨줄 제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오늘은 그 길을 다 갔을 때의 당신 모습을,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눈부시고 영광스럽게 변하신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명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보고(거룩하게 변한 예수님의 얼굴과 옷), 자신들의 귀로 직접 들으면서(“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 예수님에게 감추어진 신적 본성과 품위를 얼마동안 향유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 나타난 구약시대 율법과 예언의 두 기둥인 모세(탈출 33,18-23)와 엘리야(1열왕 19,9-13)도 거룩한 산에서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들이다. 이 두 사람이 단순히 율법과 예언의 대명사로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또한 야훼 하느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세우고 실천하기 위해 험난한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걸었던 자들이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 미리 동참했던 자들이었다. 그래서 베드로의 말대로 초막 셋을 지어 마냥 그대로 산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모세가 자신이 부당하다며 소명받기를 거부했고, 엘리야가 우상숭배자들과 싸우다 지쳐 차라리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갔던 사람들이었다. 이제 제자들은 빨리 산에서 내려가 진정 메시아를 따르는 길을 가야 한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7절)는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과 뼛속깊이 새기고 자기 목숨을 내어놓음으로써 부활에 이르는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 자기들이 보고 들은 것을 아직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말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참다운 제자 됨의 추종으로 살아야 하고 증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마주대하는 자는 누구든 자신이 허물 많은 죄인임을 안다. 그러나 죄를 씻고 그분의 모습처럼 우리도 변할 수 있음을 희망한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실천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마다 않고 살아갈 때 나도 모르게 내가 변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박상대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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