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5월10일(주일) - 부활 제5주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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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9년5월10일(주일) - 부활 제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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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9-05-09 조회수 :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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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5주일 - 나해 [오늘의 복음] 요한 15,1-8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복음산책] 가지가 나무에 머물러야 하는 소박한 진리 요한복음 15-17장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행하신 고별사의 두 번째 부분으로서 후대에 와서 첨가된 부분으로 보는 것이 학자들의 통설이다. 누가, 왜, 이 대목을 추가로 편집해야 했는지 그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와 마찬가지로 나중에 추가로 편집된 요한복음 21장을 떠올리면 답을 얻을 수도 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우리는 사도단의 으뜸인 베드로의 위상(位相)을 높이기 위해 그와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각별한 만남을 주선하고 있는 편집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요한복음 15-17장의 의도 또한 그 안에 담겨져 있으므로, 이 대목들의 내용 속에서 찾아야 한다. 편의상 앞서간 요한복음 13-14장을 1차 고별사라 하고, 이 대목을 2차 고별사라 치고 그 내용을 살펴보자. 예수님의 2차 고별사는 ‘포도나무 비유’를 통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15,1-17), 증오와 미움으로 가득 찬 세상과 제자들의 관계(15,18-16,4), 오실 성령에 대한 말씀과 성령과 제자들과의 관계(16,5-15), 제자들의 기쁨과 슬픔(16,16-33), 그리고 예수님의 장엄한 기도(17장)로 구성된다. 예수님의 기도(17장)는 그 기도의 장엄함 때문에 ‘대사제의 기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제자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시는 기도(17,1-8)와 제자들이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시는 기도(17,9-19), 그리고 미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바라시는 기도(17,20-26)로 마무리된다. 이렇게 2차 고별사는 1차 고별사보다 훨씬 길고 주제도 다양하다. 1차 고별사에서 이미 언급되었던 사랑의 새 계명, 성령의 약속과 성령의 정체, 예수님의 떠남과 재림에 관한 말씀이 반복되면서, 2차 고별사에는 새로운 주제들이 추가로 부각된다. 새로운 주제들이 앞서간 내용들을 재삼 발전시켜 그 의미를 더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는 말이다. 이 주제들을 미루어 볼 때 이 대목을 추가로 편집한 저자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제자들이 앞으로 직면할 문제들을 극복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며, 둘째는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요한복음공동체 또한 이 대목을 자신이 당면한 문제들을 극복하는 데 있어 표본으로 제시하려는 것으로 추정된다. 추가 편집자는 대략 요한복음공동체의 일원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2차 고별사는 1차 고별사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학습적 효과를 내고 있다. “일어나 가자.”(14, 31b)로 끝을 맺고 있는 1차 고별사가 시기적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예수님과 제자들 간의 현장감(現場感)을 부각시키고 있다면, 2차 고별사에서는 예수님과 제자들, 나아가 예수님과 요한복음공동체 간에 필요한 관계를 확실하게 정립하려는 학습감(學習感)이 고조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2차 고별사를 1차 고별사에서 완전히 떼어 독립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일어나 가자.”는 말씀만 빼고, 그냥 1차 고별사에 이어지는 말씀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늘 복음의 포도나무 비유는 ‘나무와 가지와 포도 열매’라는 상징성 이상의 실재(實在)를 담고 있어 별다른 해석이나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아야 할 몇 가지 점들이 있다. 포도라는 과일의 열매가 나무줄기에 열리지 않으니 포도 나뭇가지에 포도열매가 열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선 수분 공급이 잘 돼야 한다. 적당한 거름으로 된 좋은 토양이 필요하다. 물론 여름 내내 강한 햇볕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일이 있다. 포도열매를 맺을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간과하기 쉬운 진리다. 우리가 나무를 말할 때 가지는 응당히 나무에 붙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안에서 ‘머무르다.’는 말씀을 무려 8번이나 하고 계신다. 포도 수확기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가 농부에 의해 가차 없이 전지(剪枝)를 당하듯 주님 안에 머무르지 않는 자는 아무도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은 당연한 원리다. 우리가 열매를 맺음으로써 예수님의 제자가 되며, 그것으로 아버지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나는 ~이다.”는 예수님의 자기계시적 언명이 사용되었음을 특히 주의해야 한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1절)는 언명에서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에, 아버지이신 하느님이 농부에 단순히 비유된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하느님은 “모든 이의 모든 것”이다. 하나 특이한 점은 “너희는 가지다.”(5절)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예수님의 자기계시적 특허가 제자들에게도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앞서 강조되었듯이 가지가 나무에 전적으로 종속되어야 함이 전제된다. 포도나무의 가지에 해당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받아 이미 잘 가꾸어진 가지들로 소개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 하더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여기서 열매는 포도를 가리키며, 나아가 나무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른 실천적 행동을 의미한다. 이 행동실천의 골자는 1차 고별사의 핵심주제인 사랑의 새 계명이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열매를 맺기 위해 사랑 자체인 나무에 끝까지 머물러 붙어 있어야 한다. 어느 공동체든 그 안에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 공동체가 예수님께 신앙을 둔 믿음의 공동체라면,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이 아닌 것, 예를 들면 세상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길 것이며, 예수님 때문에 생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오직 예수님 안에 있다. 따라서 우리 공동체 안에 어려움이 있다면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말씀을 재삼 음미하면서 우리 자신과 예수님의 관계를 다시금 조명해야 한다. 포도나무의 가지가 포도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며, 나무에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포도원 주인에 의해 잘려나갈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는 꼭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경고성의 말씀도 되겠지만, 제자들이 우선 서로 사랑함으로써 예수님의 사랑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시는 그분의 강렬한 소망이기도 하다.[◆박상대 마르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