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1월4일(주일) - 주님 공현 대축일 >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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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9년1월4일(주일) - 주님 공현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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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9-01-10 조회수 :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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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공현 대축일 (나해) [오늘의 복음] 마태 2,1-12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복음산책] 구유의 마지막 등장인물 오늘은 주님이신 아기 예수님의 공현 대축일이다. 공현(公顯)이란 “공식적으로 나타내 보이다.”는 뜻으로서, 이는 예수께서 온 인류를 위한 구세주로 드러나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오늘날 주님 공현 대축일은 3명의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까지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와 예물을 드린 일(마태 2,1-12)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전에는 오늘의 주님 공현 대축일을 ‘거룩한 삼왕의 축일’, 또는 ‘삼왕 내조(來朝) 축일’ 등으로도 불렀다. 이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출신의 교부 테르툴리아누스(160-220경)가 동방박사들을 왕들로 추정한 데서 유래하며, 6세기경에는 이들 삼왕의 이름을 거론하여 ‘타다이다, 멜키올, 발뤼토라’라고 불렀다가, 8세기경에는 ‘카스팔, 멜키올, 발타살’로 고쳐 불렀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박사였든, 왕이었든 간에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구유의 아기를 통하여 이들에게 공현(公顯)한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주님 성탄 대축일’보다 ‘주님 공현 대축일’이 먼저 제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3세기 초까지의 초대교회가 일 년 중에 최대의 축일로 기념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절이며, 그 다음으로 모든 주일을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거행한 것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300년경에 와서 동방교회에 의해 먼저 제정되었다. 원래 1월 6일로 지정된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공현'의 뜻을 살려 예수님의 성탄, 예수님의 세례, 예수님의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요한 2,1-11),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마태 17,1-13)을 한꺼번에 기념하였다. 그 후 동․서방의 지역교회는 이들 사건들을 따로 떼어 고유의 축일로 기념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313년 이후 서방교회가 ‘불멸의 태양신 탄일’이었던 12월 25일을 ‘예수 성탄 대축일’로 제정하여 지냄으로써 주님성탄과 주님공현을 분리시켰다. 오늘날 동방교회는 1월 6일을 주님 성탄 대축일로 그 다음에 오는 주님 세례 축일을 공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1월 2일과 8일 사이에 걸리는 주일에 오늘 대축일을 지낸다. 오늘 복음이 들려주는 놀라운 동방박사들의 베들레헴 방문사건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논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또한 루가복음에서와 같이 마태오복음의 전사(前史)에 속하는 대목으로써 신화적 요소를 상당히 담고 있는 부분이다. 물론 성서학자들은 당시의 상황을 역사적 사실로 증명할만한 자료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난 1천5백 년 동안 이 전사(前史)를 토대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물론이고 비신자들까지 크리스마스 구유를 장식하여 동방박사들의 방문사건을 예수성탄 사건의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신앙적 고무(鼓舞)와 제고(提高)의 기회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말씀은 야훼의 선택받은 백성으로 자처하던 유대인들이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하던 예언자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무관심하고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멀리 있는 이방인들을 불러 유다인의 왕을 찾아보게 하신 점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예언자들의 말을 생전에 들어보지도 못한 이방인들이 오히려 유다인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자기들의 전통만을 고집하면서 다른 엉뚱한 곳에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유대인들보다는 하늘에 떠오른 별을 보고 왕을 찾아 경배하겠다는 순박한 마음으로 신앙의 긴 여행을 시작했던 3명의 동방 이방인들에게 당신의 오묘한 신비를 드러내 보이신 것이다. 왕을 찾아 경배하겠다는 일념으로 신앙의 긴 여행을 시작했던 동방 박사들의 순수하고 착한 마음은 충분히 우리 모든 신앙인들의 표본이 된다. 오늘과 같이 지도가 없던 그 당시, 먼 여행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밤에만, 그것도 맑은 밤 날씨에만 뜨는 별을 보고 그 별빛을 따라 각기 선물을 들고 누구인지도 모르는 왕을 찾아 긴 여행을 떠났다는 것, 결코 쉬운 여행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의 여행은 필시 몹시 지루하고 피곤했을 것이며 온갖 어려움을 만나서 겪어야 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루 빨리 왕을 찾아뵙겠다는 일념에 급박하고 들 떤 마음의 기쁨이 넘쳐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대목에서 에차르트(Edzard) 샤퍼(Schaper)가 저술한 ‘알타반’이라는 ‘넷째 왕의 전설’ 이야기를 떠올려 볼 수도 있겠다. 그들은 모두 한 가닥 별빛과 그 별이 의미하는 미지의 왕에게 대한 희망과 꿈으로 부풀어 있었으니, 사실상 박사들은 자기들의 남은 인생을, 자기들의 모든 것을 미지의 왕에게 내어 걸었던 것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바로 이런 점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도 구유의 아기 예수께 우리의 남은 인생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로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구유 세트에 등장해야 할 인물들이 완성되었다. 마구간 한 가운데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 그 곁에 양친이신 마리아와 요셉, 그 둘레에 소, 양 등의 가축들과 그들이 먹을 짚더미, 천장에 매달려 있는 천사들, 막 나가려는 목동들, 그리고 오늘 화려한 왕의 복장으로 각기 황금, 유황, 몰약의 선물을 손에 들고 정중히 등장한 세 명의 동방박사들과 그들이 타고 온 말들… 세 명의 박사들 중 한 명은 때때로 흑색 피부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혹시 여기에 빠진 사람은 없는가? 물론 있다. 구유에 두 사람이 아직 빠져있다. 바로 나 자신과 헤로데 대왕이다. 나 자신도 구유 앞에 실제 인물로 등장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직 헤로데 대왕은 보이지 않는다. 주님의 탄생을 준비하고 맞이하면서 이 놀라운 사건을 처음부터 함께 하여 온 나 자신도 그들 속에 끼여 예수님을 경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림기간 동안 성탄 준비에 소홀히 했다면 나는 필시 구유에서 멀리 떨어져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합당한 준비 없이 성탄을 맞이하여 구유 앞에 왔다면 성탄축일도 공현축일도 그만큼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또한 오늘 이 구유의 마지막 등장인물로서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를 보다 깊이 묵상하고 이를 종합하여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온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고백한다. 자신의 왕좌에 위험을 느낀 헤로데 대왕은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8절)라고 내뱉은 약속을 아직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동방박사들이 헤로데에게 아기 예수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고 각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기 때문에(12절) 헤로데가 기회를 놓쳤을 것이라는 가정은 핑계에 불과하다. 오늘도 헤로데 대왕과 유사한 이유로 구유에 나아오지 못한 신자들을 아기 예수님은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박상대 마르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