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1월18일(주일) - 연중 제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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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주일 (나해) [오늘의 복음] 요한 1,35-42 <그들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35)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그곳에 다시 서 있다가, 36)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38)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41)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42)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복음산책] “오직 예수님 곁에 머무름으로 모든 것을 채우리라.” 지나간 주일, 주님 세례 축일을 시작으로 멀고도 긴 예수님의 공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공생활의 목적은 영원한 하느님 나라를 위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을 모으는 일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공생활이 요한의 세례와 동시에 일어난 예수님 자신의 세례사건으로 개시되었음을 보았다. 이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례자 요한이 베푸는 회개의 세례를 받음으로써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있었던 것이다. 구원은 바로 이렇게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요한이 요르단 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을 때,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사제와 레위인들, 그리고 바리사이 사람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요한은 자신이 오시기로 예언된 메시아도, 엘리야도 아니고, 어떤 예언자도 아니라고 솔직히 대답했다. 자신은 그저 앞으로 오실 주님의 길을 곧게 내라고 외치는 ‘광야의 소리’일뿐이라고 했다. 요한이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준비한 그 길과 외침을 통하여, 드디어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사명은 상당 부분 세례자 요한의 증언으로 이루어진다. 이에 관한 한 오늘 복음의 증언은 결정적이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36절) 이는 곧 요한이 이미 사람들 앞에서 증언했던 내용으로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요한 1,29)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백성의 속죄를 위한 제사의 희생물이다. 그는 작고 여린 어린양으로서 누구에게나 죄를 뉘우치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베푸는 대속물이시다. 그는 모든 권능과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 종의 신분을 취하신 ‘주님의 고통 받는 종’(이사 52,13-53,12)이다. 성령의 계시를 통하여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요한은 이제 마지막 작업을 서두른다. 이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로서, 그것은 자신의 제자들을 남김없이 예수님께 넘기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작업이 마치 새로운 세력의 주인공에게 ‘명단’을 넘기듯 단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한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너희들의 사명이 나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함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제자의 길을 선택하도록 만든다. 이 점은 공관복음에서 초기 제자들이 예수님의 직접적인 부름을 받고 제자들이 된 것과는 크게 다른 면이다. 공관복음은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하신 소명장면을 보도하고 있으나, 요한복음은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따라오는 요한의 두 제자와 예수님 사이에 “무엇을 찾느냐?” -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 “와서 보아라.”는 대화식의 소명장면을 보도하고 있다. 결국 예수님 곁에서 하루를 묵었던 두 제자는 그날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들 중 안드레아는 곧장 자기 형 시몬을 찾아가 자신이 만났던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고 형을 데려와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였다. “무엇을 찾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은 현세를 살아가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에 관한 질문이다. 이는 곧 현세의 갖가지 물질적인 풍요도 궁극적으로 채워 줄 수 없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과 갈망에 관한 질문이다. “와서 보아라.” 하신 예수님을 따라간 요한의 제자들이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머리 둘만한 변변한 방 한 칸조차 없으신 그분이 무엇을 그들에게 보여주었을까? 그들이 본 것은 오직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진 자’의 몫이었다. 인간이 전 생애를 통하여 보고자하고 얻고자하는 욕망과 갈망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이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예수님 곁에 머무름” 뿐이다.◆[박상대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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