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12월7일(주일) - 대림 제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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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 제2주일 (나해) [오늘의 복음] 마르 1,1-8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1)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2) 이사야 예언자의 글에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기록된 대로, 4)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5) 그리하여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6)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다. 7)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복음산책] 함께 마련하고 닦아야 하는 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 오셨음’과 ‘다시 오실 것’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대림시기 제2주일을 맞이하였다. 대림 제1주일의 말씀주제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것’을 겨냥한 것으로서 세상구원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의 재림예고와 그에 대한 준비의 태도로써 ‘늘 깨어 준비하고 기도하라.’(루카 21,36)는 경고였다. 오늘 대림 제2주일의 말씀주제는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직접적인 약속으로서 이사야의 예언(40,3-5)이 세례자 요한의 출현과 그가 선포하는 회개의 세례에 의해 성취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고 보면 대림시기가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불안과 초조함, 두려움과 긴장, 단식과 고행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막연한 기다림’이기보다는 메시아 예언의 성취와 그리스도의 탄생을 위해 회개를 통해 죄를 용서 받고 기쁨과 희망으로 이를 준비하는 ‘충실한 기다림’의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복음의 시작부분으로서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 이는 앞으로 선포될 복음(福音)의 주체이자 객체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의 시작이 세례자 요한의 출현으로 그 막을 올린다. 타락한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역사에서 그 중심은 단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차지하신다. 그러나 그 중심의 바닥에 세례자 요한이 서 있다. 즉, 구원역사의 시간상 흐름으로 따지자면 세례자 요한이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의 그 가운데 서 있다는 말이다. 요한이 곧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이며, 동시에 신약의 준비자며 선구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 안에서 구약의 모든 예언이 성취됨을 보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언의 핵심인 구원이 성취됨을 보게 될 것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보라, 내가 네 앞에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2-3절)는 말씀이 이사야 예언서에 쓰여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탈출기(23,21), 말라키(3,1)와 이사야(40,3) 예언서에서 발췌한 혼합인용문이다. 출처야 어떻든 세례자 요한은 예언의 성취자로서 오시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내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하느님의 사자(使者)이다. 그러나 요한은 그저 자신의 몸을 굽혀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도 없는 자로서 자기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닌 주님,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주님만을 위해 존재하는 자로 자신을 소개한다.(7-8절) 요한은 자기 아버지 즈카르야의 사회적, 종교적 지위와 영향력을 토대로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겠지만,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오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은 자가 된 것이다. 하느님께서 요한을 광야로 불러 사명을 부여하신 점도 대림시기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시끄럽고 혼탁한 세상, 밤마다 벌어지는 온갖 음주와 가무, 오직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걱정들과 계산들로 둘러싸인 머릿속,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 광야와 같은 고요함을 내 안에 준비하지 않는 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광야는 늘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곳이며,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장소이다. 하지만 사자(使者)가 받은 사명은 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마련과 닦아야 하는 길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임을 선포한다. 오시는 주님이 단지 요한만을 위한 주님이 아니라 만인의 주님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세례자 요한이 선구자로서 사람들과 함께 마련하고 이를 곧게 내어야 하는 ‘길’이란 오시는 주님을 죄 없는 깨끗한 마음으로 영접하는 일이다. 주님의 오심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죄를 뉘우쳐 용서받는 일이다. 비뚤어지고 정직하지 못한 마음을 바로 잡는 일이다.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깊숙이 파인 마음의 골을 메우는 일이다. 교만과 자만의 독선으로 쌓아올린 언덕을 무너뜨려 평평하게 닦는 일이다. 미움과 증오와 질투의 쓰레기를 쓸어내는 일이다. 헛된 욕망과 지나친 탐욕의 돌멩이를 과감히 빼내는 일이다.◆[박상대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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