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12월21일(주일) - 대림 제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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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 제4주일 (나해) [오늘의 복음] 루카 1,26-38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다.> 26)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진지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복음산책] 사람에게 간청하시는 하느님 대림환에 꽃혀 있는 네 개의 초가 모두 빛을 밝히고 있다. 첫 번째 촛불의 이름은 ‘기다림과 준비’이다. 두 번째의 이름은 ‘회개의 세례’이고, 세 번째 장밋빛 촛불은 ‘기쁨과 희망’이며, 오늘 밝힌 네 번째 흰색 촛불의 이름은 ‘간청과 순명’이다. 루카복음은 1장에서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예고하는 즉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한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예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예고의 서막(序幕)이다. 요한의 탄생예고는 오직 그리스도의 탄생예고 때문에 존재한다. 선구자는 선구자 다음에 도래하는 메시아에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서막이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본막(本幕)의 준비를 위해 존재하는 것과도 같다. 요한의 탄생예고로 말미암아 인간의 세상에 ‘새로운 무엇’이 시작되었다면, 예수님의 탄생예고는 ‘시작된 그 무엇’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세상에 선포하는 일이다. 두 개의 탄생예고를 비교해 본다면 그 과정을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루카는 요한의 탄생예고에서와 같이 예수님의 탄생예고에서도 시간과 장소를 명확히 하고 있다. 시간은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진지 정확히 여섯 달째 되는 때였다. 이는 새로운 무엇이 인간 세상에 시작된 지 6개월이 지난 때이다. 이제는 시작된 그 무엇이 도대체 무엇인지가 밝혀지는 때이다. 장소는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동네이다. 세례자 요한의 경우는 화려하고 웅장한 성도 예루살렘의 성전이었지만, 여기는 변두리 어느 한 마을이다. 즈카르야는 분향을 위해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그곳에 나타난 천사 가브리엘을 만나게 되지만,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보내어 찾아온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는다. 즈카르야는 천사의 인사도 없이 바로 메시지를 전해 듣는다. 그러나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28절)는 천사의 인사를 받고 난 다음 메시지를 전해 듣는다. 놀라기는 둘 다 마찬가지였다. 즈카르야의 경우는 이미 늙은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질 것이고, 마리아의 경우는 요셉과 약혼은 했지만 아직 남자를 모르는 처녀로서 아기를 가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즈카르야는 의심이 앞서 믿을만한 표징을 요구했고, 마리아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묻는다. 즈카르야는 불신(不信)의 대가로 벙어리가 되어 이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38절) 하면서 도저히 불가능하게 보이는 엄청난 메시지를 겸손과 순명으로 수용한다. 그 순간 예수는 이미 마리아 안에 잉태된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아들 예수는 사상 초유(初有)의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인간의 육(肉)을 취하게 된다. 마리아 안에 잉태된 아기는 “하느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가진 ‘예수’라 불릴 것이며, 그는 조상 다윗의 왕위를 받아 야곱의 후손을 영원히 다스리는 왕이 될 것이고,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예수는 위대한 분이 되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이요 만민의 주님이 될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보다 먼저 와서 세상 사람들이 이 주님을 맞아들일 만한 백성이 되도록 준비시키는 임무를 받았다. 요한은 구약성경에서 흔히 있었던 아이를 낳지 못한, 그러나 나중에 야훼의 안배로 아이를 낳은 여인들, 즉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창세11,30; 17,17; 18,11-14), 이사악의 아내 리브가(창세 25,21), 마노아의 아내요 삼손의 어머니(판관 13,2-3), 엘카나의 아내이며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1사무 1,5) 등과 같은 처지의 엘리사벳에게서 태어난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 예수는 사상 초유(初有)의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이다. 남자를 모르는 동정녀가 어떻게 아기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뜨거운 토론의 대상이다. 학계에서도 이에 대한 설(說)이 구구하다. 동정녀 잉태는 분명 우리 가톨릭교회의 ‘사도신경’ 안에 자리 잡은 신앙조목이다. 신앙조목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말미암은 동정녀 잉태를 믿는다, 또는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정녀 잉태에 대한 토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이 신앙의 조목이 사실사(事實史)인지 의미사(意味史)인지에 대한 구별이다. 이 구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구별은 칼로 물을 베는 것과 같다. 이는 이성과 감성이, 철학과 신화가, 로고스와 뮈토스가 동시에 인간정신세계에 속해있는 것과도 같다. 동정녀 잉태가 생물학적이고 물리적인 측면에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건의 한 편만을 이야기한 것이다. 사건은 다른 한 편은 아직 이야기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동정녀 잉태의 문제를 인간의 측면에서 해결하려 들면,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다. 동정녀 잉태는 세상 안에 통상 존재하는 수백만 잉태 중의 하나가 아니다. 남녀의 관계를 통한 생물학적 잉태만을 정상적으로 인정하는 세상의 눈은 동정녀 잉태를 생물학적 이변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말이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하느님께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되시는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 마리아의 수용에 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의 육(肉)을 취하는 길이며, 육을 취한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인간적 관계를 배제하는 길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스스로 마리아를 찾아가 동의를 구하셨고, 마리아의 동정성을 겸손과 순명으로 받으신 것이다. 주님의 성탄은 이렇게 하느님께서 인간을 찾아오는 사건이다. 우리 안에 인간이 되시고자 간청을 넣으러 오시는 사건이다. 인간이 되시려는 하느님의 간청에 마리아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과연 어떤 대답을 드려 하느님의 간곡한 청에 응답을 드리겠는가?◆[박상대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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