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4월5일(주일)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 복음 묵상

복음 묵상

[] 2009년4월5일(주일)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작성일 : 2009-04-04 조회수 : 1,979

본문

◎ 주님 수난 성지주일 (나)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념식 복음] 마르 11,1-10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1) 그들이 예루살렘 곧 올리브 산 근처 벳파게와 베타니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 둘을 보내며 2) 말씀하셨다. “너희 맞은쪽 동네로 가거라. 그곳에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을 풀어 끌고 오너라. 3) 누가 너희에게 ‘왜 그러는 거요?’ 하거든, ‘주님께서 필요하셔서 그러는데 곧 이리로 돌려보내신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4) 그들이 가서 보니, 과연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바깥 길 쪽으로 난 문 곁에 매여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것을 푸는데, 5) 거기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이, “왜 그 어린 나귀를 푸는 거요?” 하고 물었다. 6)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대로 말하였더니 그들이 막지 않았다. 7) 제자들은 그 어린 나귀를 예수님께 끌고 와서 그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어 놓았다. 예수님께서 그 위에 올라앉으시자, 8) 많은 이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깔았다. 또 어떤 이들은 들에서 잎이 많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깔았다. 9) 그리고 앞서 가는 이들과 뒤따라가는 이들이 외쳤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10)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되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수난복음] 마르 14,1-15,47 [복음산책] 주님 공생활의 마지막 일주일 오늘 주님 수난 성지주일을 시작으로 교회는 1년 전례력의 가장 거룩한 한 주간인 성주간을 맞이한다. 성주간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성지주일을 시작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월요일, 유다와 베드로의 배반을 예고하는 화요일, 유다의 실제적인 배반과 최후의 만찬을 준비시켜 임하는 수요일,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을 통해 성체성사를 제정하고, 친히 제자의 발을 씻겨 사랑의 본보기를 주며,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땀 섞인 마지막 기도를 아버지께 바친 성목요일,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체포되어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결국에는 사형선고를 받고 갖은 수모와 조롱의 십자가를 지고 죽음에 이르는 성금요일, 살아 계실 적에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안식의 무덤에 묻히는 성토요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어찌 거룩한 주간인가? 온통 배신과 처절함으로 가득 찬 주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주간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이 성주간이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가져온 인류구원사건의 최고 절정을 이루는 부활성야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자칫 죽음으로 끝나버릴 세상에 영원한 생명을 가져온 초유(初有)의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오늘은 예수께서 지금껏 받지 못하셨던 영광을 허락하시고 군중의 환호와 열광을 한 몸에 받으신다.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마르 11,9) 이는 예수께서 당신이 왕이며 메시아임을 부르짖는 군중의 고백을 받아들이시는 것이다. 오늘 전례에서는 두 개의 복음이 봉독된다. 제1부 행렬을 위한 복음(마르 11,1-10)으로 예수님의 당시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고, 제2부 미사의 말씀전례에서는 수난복음(마르 14,1-15,47)을 장엄하게 봉독함으로써 성주간 중 그 절정을 이루는 성삼일(聖三日)의 만찬, 수난, 죽음의 사건을 미리 앞당겨 기념한다.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은 제자 둘을 시켜 새끼 나귀 한 마리를 구해 오도록 하신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시기도 하다. 이미 예언자 즈카르야가 외쳤듯이 예수께서는 세상의 왕이나 개선장군이 타는 군마(軍馬)가 아닌 겸손을 상징하는 나귀에 오르셨다.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그분은 에프라임에서 병거를,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시고 전쟁에서 쓰는 활을 꺾으시어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시리라. 그분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즈카 9,9-10)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예수님을 향하여 군중들이 만세를 외치며 환호하고 그 가시는 길에 겉옷과 나뭇가지를 깔고서 열광하는 모습은 솔로몬의 즉위식(1열왕 1,38-40)과 예후의 즉위식(2열왕 9,12-13)을 연상시킨다. 군중들의 이러한 태도는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께서 솔로몬이나 예후와 똑같은 왕으로 군림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곧바로 무너진다. 예수님은 말 그대로 평화와 겸손의 왕이요, 야훼의 고통 받는 종이시기 때문이다.(이사 50,4-7/제1독서) 우리는 오늘의 전례가 관중들의 믿음과 불신, 환호와 배신, 기쁨과 슬픔 등, 두 가지 서로 다른 극단의 측면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예수께서는 환호하고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군중들과 천진난만하게 기뻐하는 어린아이들 에 둘러 싸여 성대하고 웅장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우리도 오늘 이 미사를 시작하면서 행렬을 통하여 그 기쁨에 동참한다. 그러나 곧바로 미사 중에 듣게 되는 수난 복음을 통하여 기쁨과 환호의 장면들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모든 것이 아픔과 죽음으로 향하는 비탄에 젖은 분위기를 느껴야 한다. 이런 까닭에 오늘 주일을 “성지주일”(환호와 열광), 그리고 “수난주일”(아픔과 죽음)이라 하며, 이 둘을 합쳐서 “주님수난성지주일”이라 부르는 것이다. 사실상 예수께서는 당신의 공생활 중에 한 번도 스스로 영광을 받으려 하시지 않았다. 병자들과 악령 들린 사람들을 치유하는 기적을 행하신 후에도 당신의 이름을 알리지 말기를 단단히 당부하셨으며,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 이상의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베푸신 후에 군중들의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 했지만 그분은 거절하시고 오히려 그 자리를 피하셨다. 이미 위에서 언급하였지만, 오늘만큼은 예수께서 지금껏 받지 못하셨던 영광을 허락하시고 환호와 열광을 한 몸에 받으신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군중들이 외친다. 이는 곧 예수께서 당신이 왕이며 메시아임을 부르짖는 군중의 고백을 받아들이시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제 머지않아 몸소 수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또 부활하심으로써 친히 영원한 왕이시며, 메시아로서 드러나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를 왕이며 메시아라 부르고 환호하던 군중들은 백성의 대사제들과 원로들, 그리고 율법학자들의 선동에 빠져들어 마음이 변한다. 그들은 돌변하여 살인자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부추긴다. 예수님의 주변에는 차츰 빈자리가 생기기 시작하나. 군중들과 당신의 친 제자 유다만이 당신을 배반하여 떠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겁에 질려 스승을 버리고, 베드로까지도 스승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였다. 결국 사형선고를 받으신 예수님! 머리 위에는 왕관이 아닌 가시관이 씌워지고 채찍질에 온몸이 헤어져 피범벅이 된 예수! 이제 그분은 몸소 매어 달리실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로 향하신다. 이미 그분은 세 차례나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매일 나를 따라야 한다.”고 … 한때는 환호하고 열광하던 군중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옆에 따라 가면서 침을 뱉고 조롱하는 구경꾼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구경꾼인가? 동반자인가? 아니면 방관자인가?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행렬에 임하고 있는가? 또 어떤 마음으로 수난복음을 들었는가? 우리가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며 “호산나!”를 외치는 것은 그분이 진정 메시아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가 처절한 고통의 수난복음을 듣는 것은 우리도 그분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그 위에서 목숨을 내어놓기 위해서이다. 이제 그분의 길은 우리의 길이 되었고 그분의 십자가는 우리의 십자가가 되었다. 이제 이 십자가를 지고 오늘 우리의 귀로 똑똑히 들었던 긴 수난복음만큼이나 긴 암흑의 터널을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자. 내일 성주간 월요일부터는 암흑의 긴 터널을 하나씩 토막 내어 부둥켜안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며 내 것으로 만들어가야 하리라. “사랑하올 주 예수님,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당신을 낮추셨으니, 교만하고 거만한 저희들을 용서하소서. 그러나 하느님께서 모든 것 위에 당신을 높이셨으니, 죄악으로 나약하고 부실한 한 저희를 받아 일으켜 세워주소서. 이제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고백하나이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시여!” 아멘.[◆박상대 마르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