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8월17일(주일) - 연중 제20주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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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8년8월17일(주일) - 연중 제20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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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8-08-16 조회수 :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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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0주일 (가해) ◉ [오늘의 복음] 마태 15,21-28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21)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복음산책] 선택받은 백성을 넘어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만이 하느님 야훼로부터 간택된 백성이며 자기들만이 구원 받으리라는 배타적인 선민사상과 구원관에 사로 잡혀있었다. 비참했던 바빌론 유배 생활을 몸소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저버리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른바 로마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했을 때는 노예생활로부터 자기들을 해방시켜줄 메시아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러한 정치적인 상황으로부터 해방시켜줄 메시아를 하느님께서 보내 주시리라 기다렸던 것이다. 이러한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은 로마 군인들이 이스라엘의 전역에서 판을 치며 자기 백성들을 억압하여 자유를 박탈해 갔을 때 더욱 고조되어 갔다. 자유를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빨리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메시아가 나타나 로마 제국을 무찔러 자기들을 해방시켜주고 메시아 친히 자기 나라의 왕으로 군림하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메시아는 비천한 마구간 출신의 나자렛 평민으로 등장한다. 그분은 백성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지상의 왕국이 아니라 천상의 왕국을 선포하시며, 로마 군인들을 내어 몰기는커녕 가난하고 구박받고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억압받는 이들에게 지상의 행복 보다는 천상의 행복을 약속하신다. 그분은 스스로 “나는 왕으로 군림하러 오지 않고 오히려 봉사하러 온 종이다.”라고 하신다.(마태 20,28; 마르 10,45) 모세의 율법에만 얽매여 형식만을 중요시하던 백성의 지도자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사람들, 정치적인 메시아만을 기대하던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부인하고, 그분을 참된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예수의 행동거지 하나하나 마다 꼬투리를 잡고 올무를 걸어 씌우고 모함하여 결국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로 고발하여 로마 군인들에게 넘겨 십자가형을 받게 하고 만다. 이 모든 것을 미리 내다보신 예수께서 오늘은 갈릴래아 지방을 떠나 멀리 지중해 연안의 이방인들의 도시인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여기서 예수님은 고향을 떠나와 이곳에 사는 한 가나안 여인을 만나신다. 마귀가 들린 딸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낯선 이방인의 도시 구석에 사는 가엾고 불쌍한, 남편도 없어 보이는 한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들이 갖지 못한 눈과 귀를 가졌다. 그것으로 보면 그녀는 누구보다 부자다. 예수를 알아보았고, 그분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여인이 오늘 예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복음의 주인공이다. 예수께 대한 그녀의 태도는 선민(選民)도 아닌,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비난 받던 한 이방인 여인의 전 생애를 건 마지막 희망이기에 이는 참된 믿음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녀는 마귀 들린 자신의 딸을 예수께서 분명히 구해주시리라는 확실한 믿음 속에서 큰 소리로 외친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22절) 가나안 여인의 계속적인 애달픈 간청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신다. 여기서 예수님의 차가운 모습을 우선적으로 느낄 수 있지만, 그 분은 좀 더 지체하시면서 그 여인의 마음과 믿음을 살피신다. 자꾸 소리를 지르며 따라오고 있는 여인을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언질하자, 그분께서는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24절) 하시며 맞장구를 치신다. 이 말씀을 곁에서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분명 사뭇 기뻐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예수라는 자도 이스라엘만이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 예수님께 다가와 꿇어 엎드려 도와 달라고 간청하는 가나안 여인에게 그분은 다시 한 번 매몰차게 차가운 말씀을 던지신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26절)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약속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나누어 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말인 셈이다. 예수님의 부정적인 이 말씀 가운데는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나누어질 수 있다는 강력한 긍정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가능성이 바로 이어지는 여인의 장한 믿음을 통하여 백일하에 드러난다. 여인의 믿음에 찬 항구한 간청을 들어보라.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27절) 이 얼마나 강한 믿음인가. 보잘것없는 한 이방인 가나안 여인의 끈질기고 장한 믿음에 탄복한 예수님은 그녀의 소원대로 딸을 치유해 주신다. 이방인인 가나안 여인의 딸을 치유해 주심으로써 예수님은 이스라엘만이 선민으로서 하느님의 구원을 받으리라는 배타적인 구원관을 뒤집어 엎어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건 이방인이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참 메시아로 모시고 그 분께 믿음을 두는 자는 하느님의 백성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또한 이들에게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신 것이다. 보잘것없는 한 이방인 가나안 여인의 항구한 믿음에서 출발하여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힘입어 세례를 받고 미사 때마다 그분의 식탁 주위에 앉아 있는 우리들이 바로 새 이스라엘 백성이며,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다. 이를 우리는 교회라 부른다. 오늘부터 이 교회에는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강아지도 속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의 한 일원으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는 가나안 여인의 항구하고 끈기 있는 참된 믿음 앞에서 우리의 믿음을 살펴보아야 한다. 혹시 비신자들과 함께 한 식당에서 자신 있고, 정성스럽게 성호를 그으면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기 보다는 배나 옆구리에 작은 십자표를 그리면서 자신이 신자임을 나타내기를 부끄러워하지는 않는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습관적으로 기도하거나 필요한 때만 기도하면서 하느님께서 나의 기도를 꼭 들어 주셔야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는지? 나의 기도가 허락되지 않거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낙담하거나 심지어는 하느님을 원망하지는 않는지? 우리 그리스도인은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백성의 일원으로 교회 신비체의 한 지체임을 자랑스럽고 기쁘게 생각하고, 가정, 직당 학교, 그 밖의 여러 생활 터전에서 하느님을 증거하고, 신앙의 모범을 통하여 비신자들을 교화해야 한다. 또한 언제나 겸손과 신뢰하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가나안 여인의 항구한 간청과 믿음에도 불구하고 흔히 지체하시고 침묵하시며 더 기다리시는 하느님을 원망하지 말고, 기도하고 간청함에 지치지 말도록 하자. 그분은 때때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신다. 그러나 항구하고 끈기 있는 기도는 분명히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얻을 것이다.◆[박상대 마르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