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8월24일(주일) - 연중 제21주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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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8년8월24일(주일) - 연중 제2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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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8-08-23 조회수 : 2,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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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1주일 (가해) [오늘의 복음] 마태 16,13-20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런 다음 제자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복음산책] 제자들의 구두시험: 100점 맞은 베드로 오늘 복음은 베드로가 자기들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장면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자신의 수난,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는 말씀의 도입부에 해당한다. 공관복음에 따른 예수님의 행보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5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후(마태 14,13-21; 마르 6,30-44; 루카 9,10-17, 그리고 요한 6,1-14 참조) 잠시 지체하시다가 갈릴래아를 떠나 이스라엘의 북서쪽 이방인 지역으로 발걸음을 옮기신 것으로 나타난다. 정확히 하자면 지난주일 복음에서 들은 바와 같이 당시 시리아 페니키아 지역에 해당하는 티로와 시돈으로 가신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한 가나안 여인의 끈질긴 믿음에 탄복하여 마귀 들린 그녀의 딸을 치유해 주셨다.(마태 15,21-28; 마르 7,24-30) 예수님의 이방인 지역에까지의 행보는 아주 중요한 사건으로, 이스라엘의 배타적인 선민사상과 구원관을 무너뜨리고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선포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공생활이 일단락되어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제 남은 것은 예수님의 마지막을 위하여 제자들을 준비시키는 일이다. 이 일은 예수님께 대한 베드로의 신앙고백(마태 16,13-20; 마르 8,27-30; 루카 9,18-21)을 시작으로 예수님의 수난, 죽음과 부활의 예고(마태 16,21-23; 마르 8,31-33; 루카 9,22-22), 예수님을 추종하는 방법(마태 16,24-28; 마르 8,34; 루카 9,23-27),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사건(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 두 번째 수난과 부활의 예고(마태 17,22-23; 마르 9,30-32; 루카 9,43-45), 그리고 예수님의 마지막 종착역이 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떠나시는 것(마태 19,1; 마르 10,1; 루카 9,51)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지식을 염두에 둔다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활동을 서서히 종결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예루살렘 상경 길에 오르는 인류구원 드라마의 서곡을 오늘 복음이 맡고 있는 셈이다. 예수님의 일행이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이르렀다.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필립보가 헤르몬 산이 만드는 지하수가 샘솟는 곳을 골라 기원전 2년경 건설한 도시로서, 갈릴래아 호수 북쪽 약 40Km 지점에 있다. 헤르몬 산은 안티레바논산맥 남쪽 끝의 레바논과 시리아 국경에 있는 해발고도 2814m의 산으로서, 옛날부터 성스러운 산으로 숭배되었고, 산꼭대기는 만년설로 덮여 있어, 그 눈이 녹아 요르단 강 수원(水源)을 형성한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신다. 이 질문은 마치 하나의 필기시험과도 같은 것이다. 제자들이 3년가량 따라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자기들의 스승인 예수가 누구인지를 답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질문은 2단계로 구성된다. 예수님께서는 우선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들 하는지에 대하여 물으신다.(13절)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소생(蘇生)한 세례자 요한이나 엘리야나 예레미야 중 하나로 생각하기도 하였고, 다른 예언자로 여겼다.(14절) 그리 나쁘지 않은 평판이다. 이스라엘 전통에 죽었던 예언자가 다시 살아 올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다소 억척스런 부분이 있다. 예수님을 예언자로 생각하는 것은 예언자가 시대의 징표를 읽고 기적을 일으키며 하느님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는 사람이기는 하나, 통상 그 말로가 시련과 고통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다음 단계로 예수님의 질문은 제자들을 향한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5절) 시몬 베드로가 나서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절) 하고 대답한다. 이 대목에서 마르코복음은 단순히 “그리스도”(마르 8,29)로, 루카복음은 “하느님의 그리스도”(루카 9,20)로 소개하면서 즉각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고 ‘엄중히 분부’하는 예수님의 함구령을 덧붙이고 이 단락을 끝맺고 있다. 물론 마태오복음도 함구령을 덧붙이지만(20절), 그 사이에 베드로의 대답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와 찬사, 그리고 두 가지 약속을 첨가하였다. 이는 마태오 자신의 독자적인 편집이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의 필기시험을 만점, 즉 100점으로 평가하시고는 그를 행복한 자로 여기신다. 그런데 만점의 결과가 하느님의 계시에 의한 것임을 밝혀 두신다.(17절) 이어서 베드로에게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약속을 하신다. 첫째는 시몬 베드로(돌, 바위)를 초석으로 삼아 그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교회창립 약속이다. 그리고 이 교회는 이승의 세력은 물론, 저승의 세력까지 능가하는 그런 조직이 될 것이다.(18절) 둘째는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이 약속은 지상과 천국에 관한 매고 푸는 권한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땅에서 매고 푸는 대로 하늘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약속이다.(19절) 이는 실로 엄청난 약속이며, 이 약속이 실현된다면 베드로가 가지는 권능은 절대적이다. 이 구절에 대한 해석 때문에 학자들뿐만 아니라 가톨릭교회와 그 밖의 다른 교회 간에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베드로, 즉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 전체에 주시는 권능인지, 아니면 베드로라는 수제자 개인과 그를 계승하는 교황의 인격에 주시는 권능인지를 따지는 것이다. 대답은 쉽지 않다. 예수님께서 거짓으로 약속하실 리는 없을 것이므로 어느 쪽에든 그 권능이 주어져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아마 교회 전체에 주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전체 교회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과 주교단에 의해 일치됨으로 이들의 권한과 책임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이 엄청난 권능을 교회나 교황이 임의로 행사할 수 있는 그런 권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교회와 베드로에게 약속하신 권능은 철저하게 하느님의 계획에 달려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매여 있다. 이런 사실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말씀과 이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에서 즉각 드러난다. 예수님의 머지않은 수난과 죽음은 이미 예정된 사실이지만 제자들에게는 쉽게 수용될 사안이 아니었다. 방금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틀림없이 고백한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관한 예고를 듣고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 보라! 그는 예수님을 꼭 붙들고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22절) 하며, 금방 받은 자신의 권한을 예수님의 그런 수난과 죽음을 저지하는 데 사용하려 하고 있으며, 그래서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말리려 하였던 것이다. 이것으로 베드로 고백의 진가가 드러난 셈이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정확한 고백이지만 속으로는 형편없는 고백이 되고 말았다. 필기시험에서 100점을 얻은 베드로가 실기시험에서 빵점을 맞은 격이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태도는 예수님께 사탄과도 같은 장애물로 간주된다.(23절) 실기시험에도 100점을 얻을 수 있을 지는 베드로에게 남은 숙제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남은 생애를 통하여 이 숙제를 완수해야 한다. 이 숙제는 우리들에도 같은 비중으로 주어져 있을 것이다.◆[박상대 마르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