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2월1일(주일) - 연중 제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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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4주일 (나해) [오늘의 복음] 마르 1,21-28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21) 그들은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복음산책]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복음선포의 항해를 시작하다. 앞 다투어 발전하는 첨단 통신장비들이 제공하는 유선과 무선, 아날로그와 디지털,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하여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수많은 지식과 정보들! 참으로 볼 것도 많고 들을 것도 많으며, 배울 것도 많고 알아 두어야 할 것도 많다. 그렇다보니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지 분별하기도 쉽지 않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코헬렛 1,9) 했거늘 이 많은 지식과 정보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모두가 인간의 머릿속에서 나올 것이다. 인간의 두뇌는 무한한 가능성의 산실(産室)이다. 이성과 감성, 예지와 경험이 교차하여 쏟아내는 이 엄청난 것들. 허나 하루만 지나면 이들은 쓰레기가 된다. 혹시나 해서 노트나 폴더에 잡아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잊히고 만다. 명석하고 바지런한 주인을 만났으면 모를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그 속에서 그렇게 잠들고 만다. 그러나 오늘 놀랍고도 새로운 가르침이 선포된다. 어느 안식일에 카파르나움의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한 가르침이다. 당장 보아서는 어떤 가르침이 선포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알고 있다. 그것은 율법보다 사람을 더 중요하게 내세우는 사랑의 가르침, 오감(五感)이 지배하는 육체의 세계뿐 아니라 영(靈)의 세계를 동시에 꿰뚫는 진리의 가르침, 그리고 말씀에도 행동에도 어느 한 곳에 일방적으로 머물지 않고 말씀에 행동이 일치하는 봉사의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에 청중은 모두가 놀라버렸다. 권위가 있는 가르침이었다고 한다.(22절) 가르침에 있어서 권위가 있다 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가르침의 내용이나 가르침을 주는 사람에게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가르침의 진정한 권위는 가르침의 내용과 이를 베푸는 화자(話者)의 인격(人格), 그리고 청자(聽者), 이 셋의 공감(共感)으로 형성되는 것으로서 가르침에 따른 행위를 유발시키는 힘일 것이다. 이러한 힘을 지닌 예수님의 말씀은 이미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 울려 퍼졌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언뜻 보기에 단 두 마디 밖에 되지 않는 이 말씀에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으며 그곳을 생업의 터전으로 반평생 이상을 살아왔던 어부들 네 사람이 지체 없이 낯선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 이 얼마나 놀랍고 장엄한 말씀이며 가르침인가?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 그리고 어부들 사이에 공감이 형성되어 추종의 힘이 발생된 것이다. 이런 경험은 내가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첫 제자들로서 시몬과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었다. 그들이 고기를 잡는 배와 그물은 버렸지만 사람을 낚는 배에 올랐다. 배의 이름은 ‘복음선포 호(號)’이며, 선장은 예수님이시고, 제자들은 선원들이며, 목적지는 세상이라는 항로를 통한 하느님나라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죄로 물들어 구원이 필요한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복음선포의 항해(航海)를 시작한 것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을 태운 복음선포 호가 오늘은 카파르나움 회당에 도착하였고,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첫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께서 곧바로 사람 낚는 배를 타고 복음선포의 첫 하루를 카파르나움의 회당(會堂, Synagogue)에서 시작한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나라가 망하고 유배생활을 시작하던 때부터(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성전을 모방하여 곳곳에 지어진 회당은 유다인들의 종교와 신앙의 중심이었다. 그들은 하루에 세 번 회당에 들러 기도하였으며, 안식일에는 모두가 회당에 모여 야훼신앙을 고백하고, 모세오경과 예언서를 봉독하고 그 내용을 설교하였다. 안식일에 회당예배에 오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어떤 내용의 가르침을 주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의 권위에 놀라버렸다. 그 가르침의 효과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오경과 예언서를 바탕으로 율법과 조상의 전통을 가르치는 율사들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르침의 권위는 오히려 악령 들린 사람의 입을 통해 선포된다. 예수님은 곧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복음선포 첫 날이 권위 있는 가르침과 더불어 더러운 악령이 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일로 시작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점이다. 마르코복음에서 뿐만 아니라 루카복음에서도 구마 기적이 예수님 공생활의 첫 번째 기적으로 보도된다.(마르 1,21-28; 루카 4,31-37) 이는 도래한 하느님나라가 근본적으로 세상의 악한 세력과 대립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하느님나라의 성취는 세상의 악(惡)을 제거함으로써 가능함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악을 제거하는 일이 구마 기적과 같은 기적으로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악을 일삼는 세상과 인간의 회개와 참회로 이루어지며, 구원자로 오신 예수께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오늘 복음이 보여주듯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움과 찬사를 보냈으나, 예수님을 믿었다는 말은 아직 없다. 악령도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분의 명령에 복종하였으나, 이는 믿음에의 순종이 아니라 두려움에의 복종이다. 따라서 사람들도 악령도 모두가 아직은 악의 암흑 속에 있다. 진정한 믿음의 순종은 사랑과 진리와 봉사의 가르침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며, 이 가르침을 주시는 예수님의 권위에 자신을 순명케 하는 것이다. 이로써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복음선포의 항해는 계속될 것이다.◆[박상대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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