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3월29일(주일) - 사순 제5주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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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9년3월29일(주일) - 사순 제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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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9-03-28 조회수 :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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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5주일 (나해) [오늘의 복음] 요한 12,20-33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0) 축제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몇 명 있었다. 21)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22)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리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27)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28)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그러자 하늘에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29) 그곳에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들은 군중은 천둥이 울렸다고 하였다. 그러나 “천사가 저분에게 말하였다.” 하는 이들도 있었다. 3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 소리는 내가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내린 것이다. 31)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32)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33)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복음산책] 역설(逆說)적인 삶의 법칙을 위하여 어느 일류 회사의 입사시험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나는 어떤 답을 쓸 수 있을까? “당신은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길에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버스 정류장을 지나려는데, 그곳에는 세 사람이 추위와 두려움에 떨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힘에 부쳐 거의 죽어가는 할머니, 어릴 적 당신의 생명을 구해준 의사, 그리고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여자. 그러나 당신은 딱 한 명만을 차에 태울 수 있습니다. 과연 누구를 태우겠습니까?” 수백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수석으로 합격한 응시자가 써낸 답은 다음과 같았다. “저는 의사 선생님께 제 차 열쇠를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의사 선생님께서 할머니를 병원에 모셔갈 수 있도록 하고, 저는 제 이상형의 여인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겠습니다.” 참으로 기상천외하고 재치 있는 답변이다. 공관복음이 나자렛의 평범한 인간인 예수로부터 메시아 그리스도에 이르는 신앙을 목적으로 하는 “상향(上向) 그리스도론”을 전개하고 있는 반면, 요한복음은 그와는 반대 방향인 “하향(下向) 그리스도론”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요한복음이 이해하기에 그만큼 어렵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한복음 전체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제1부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기록한 부분으로서 머리말에 해당하는 프롤로그(1,1-18), 세례자 요한의 증언활동(1,19-34), 제자소명사화(1,35-51),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펼치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적 활동과 가르침(2,1-12,36)을 담고 있으며, 공생활 전체의 간단한 요약(12,37-50)으로 마감된다. 제2부는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마지막 행적(최후만찬)과 고별 가르침(13장-17장), 수난과 죽음과 부활사건(18장-20,29)을 보도하고 있으며, 복음서의 저술의 목적과 부록(20,30-21장)으로 마감된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 제1부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한다. 이는 세상을 향한 예수님의 자기 계시적 활동이 그 마지막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부분이며, 목전에 놓여있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사순 제5주일이다. 이제 때가 왔다. 지금껏 그분은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고 하셨다.(요한 2,4; 7,8; 7,30; 8,20 참조) 그러나 오늘은 바로 그 때가 왔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23절) 요한복음은 해방절로 추정되는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올라온 몇 명의 그리스 사람들이 필립보에게 가서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21절)라는 부탁을 드림으로써 예수님의 “때가 왔음”을 알리고 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필립보와 안드레아가 그리스 식 이름이라는 사실이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리스 사람들의 등장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왔다는 때”를 통하여 가져 올 보편적인 구원을 암시한다. 이로써 세상을 향한 예수님 자신의 직접적인 계시적 활동과 가르침은 끝났다. 즉 유다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자기 해명과 변호가 끝났다는 말이다. 이제 유다인과 이방인들을 포함한 세상은 더 이상 귀로써 들을 것은 없고, “오직 눈으로 볼 것만” 남아 있다는 말이다. 세상은 예수님을 통하여 과연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우선은 예수님의 처참한 모습이다.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그러나 이런 처참한 모습이 그분 삶의 목적이 아니다. 그런 다음 그분의 참 모습이 드러난다. “이제 그는 수많은 민족들을 놀라게 하고, 임금들도 그 앞에서 입을 다물리니,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그들이 보고, 들어 보지 못한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분은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한 분이 될 것이다.”(이사 52,13-15) 이렇게 세상이 보게 되는 것은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을 통하여 부활에 이르는 역설적인 삶의 모습이다. 이는 나아가 성공한 삶의 모습이다. 망가지고 또 망가져 형태조차 알 수 없고, 낮추고 또 낮춰 이마가 땅에 닿으며, 비우고 또 비워 아무 것도 남지 않으면, 그때 더 빛나고, 더 높이 오른다는 것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자는 목숨을 잃게 되고, 미워하는 자는 오히려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자신이 이제껏 본 적도 알지도 못했던, 자기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율법이 아니라 사랑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이는 서로 나누고 사귀며 섬기는 세상이다. 누구든지 제 것을 아끼면 오히려 잃게 되고, 남을 위해 베풀면 실제로 얻게 되는 세상이다. 자신을 더 낮추고 버리고 비워, 되도록 많이 깨지고 망가지면 오히려 목적한 바를 얻게 되는 역설의 법칙이 통용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법칙에 따라 산다는 것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법칙을 세워 몸소 이를 보여주어야 함에 앞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산란하다.”고 하셨다. 그것은 먼저 자신의 귀중한 것을 내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먼저 자신의 생명을 죽음에 내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어 주실 하느님께 “큰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탄원하면서”(히브 5,7/제2독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실 것이다.◆[박상대 마르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