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6월08일(주일) - 연중 제10주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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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8년6월08일(주일) - 연중 제10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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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8-06-05 조회수 :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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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10주일 (가해) [오늘의 복음] 마태 9,9-13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9)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복음산책] “혹시, 저더러 따르라는 말씀입니까?” “Mens sana in corpore sano!”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던가? 병든 자의 아픔은 육체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은 라틴어 속담이다. 육체가 약해지면 영혼도 약해지기 마련이다. 예수님 시대에 한센병(나병) 등 모든 종류의 피부병 환자들을 물론이고 갖가지 육체의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은 죄인으로 취급받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그러나 실제로 모세의 율법이 규정하는 바에 의하면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사제의 선언에 의해 스스로 ‘부정(不淨)한 사람’이라고 외쳐야 하며, 병이 있는 동안 그 사람은 진지 밖에 자리를 잡고 따로 살아야 하기는 했다.(레위 13,46) 그러나 율법이 그를 죄인(罪人)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병자들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격리시키고 소외시켰는가? 바로 사람들이다. 그들이 바로 스스로의 죄를 씻기 위해 하느님께 날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던 사제들이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다. 물론 하느님 앞에 죄인이 아닌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라도 사람이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지 못한다. 죄인은 스스로에 의해 고백되거나 하느님에 의해서만 선언될 뿐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람을 죄인으로 규정하기보다 가급적 죄를 묻지 않으시며, 묻더라도 용서하기 위해 물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어떤 병자든 그의 병을 치유하기에 앞서 죄를 먼저 용서하여 주신 것은 육체적인 병보다 그로 인해 죄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살아야 했던 정신적인 병을 더 걱정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예수께서는 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그릇된 사고(思考)를 바로잡아 주신다. 오늘 복음을 보자. 직업이 세리였던 마태오가 제자로 불림을 받는다. “나를 따라라.”는 예수님의 한 말씀에 즉각 따라 나선 마태오다. 단 한 구절의 간략한 이 대목은 사실상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카파르나움 도읍의 나들목에 자리를 잡고 로마제국을 위해 각종 세금을 거둬들이는 세리 마태오는 이미 당대의 상업적 죄인으로 취급받았다. 만약 내가 세리였다면 어떻게 했겠는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이 설마 나를 향한 말씀이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 본인 스스로가 죄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의 이 대목을 기록한 마태오복음사가 스스로가 자신을 죄인의 그룹에 넣고 있다. 그러면서 누구를 부르는 것인지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을 것이다.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자, 마태오는 자신을 가리키며 “혹시, 저 말입니까?”하고 반문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태오의 반신반의가 믿음으로 기울었다. 이미 여러 제자들뿐 아니라 무리를 거느리고 다니시는 예수께서 자신을 지목한 것이다. 기회는 왔다. 언젠가는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세리의 직업을 벗어 던지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래서 마태오는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런 미련 없이 예수를 따라 나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 안에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 하느님의 말씀과 행동의 핵심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과 스스로 죄인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대한 자비와 용서이다. 마태오는 자신의 복음 안에서 이러한 핵심적인 내용들을 계속해서 피력한다. 오늘 복음도 마르코가 전하는 세리의 소명사화(마르 2,14-17)를 옮겨 쓰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마태오는 자신의 편집의도에 집중한다. 마태오의 편집 의도는 소외된 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관심이다. 그래서 세관원의 소명사화에서 마르코가 말하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는 이름을 자신을 지칭하는 마태오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결국 마태오는 소명사화의 주인공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이것은 마르코가 정작 예수의 제자로 불림 받은 알패오의 아들 세관원 레위의 이름을(마르 2,14) 12제자의 명단에는 마태오(마르 3,18)로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