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9월21일(주일) - 한국순교성인대축일 >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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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8년9월21일(주일) - 한국순교성인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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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8-09-21 조회수 : 2,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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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2008년 9월 21일: 가해] [오늘의 복음] 루가 9,23-26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복음산책] 예수님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 한국에 천주교가 정착하기까지는 여러 번 시도가 있었다. 임진왜란(1592~1598) 때 예수회 소속 세스페데스 신부가 일본의 소서행장을 비롯한 많은 천주교 신자들로 구성된 침략군의 종군신부 자격으로 경상남도 진해에 상륙하여 미사를 봉헌하며, 포로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등 선교를 시도하였으나 크게 뜻을 이루지 못했다. 병자호란(1637~1638) 때 중국 선양에서 볼모로 잡혀있던 소현세자 역시 천주교를 접하고 호감을 가졌지만, 귀국 후에 잇따른 그의 죽음으로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천주교(서학)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이미 조선시대 후기 17세기 초엽에 창설된 실학파에 의해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실학파는 전통유학(儒學)의 전근대적인 사고와 가치관에서 탈피,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眞理)를 탐구하려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태도에서 출발하였다. 18세기 말엽에 이르러 실학파의 학자들은 천주교를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종교적 신앙으로 받아들여 소위 ‘비신자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신앙을 실천하였다. 그러나 신자가 되기 위해서 세례를 받아야 함을 알고는 북경으로 가는 동지사 편에 이승훈을 딸려 보낸다. 1984년 이승훈(베드로)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은 후 관련서적들과 성물(聖物)들을 가지고 귀국함으로써 천주교 신앙공동체는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초기 공동체가 임의로 만들어 실시한 ‘가성직(假聖職)제도’ 또한 교회사에 유례없는 조직이다. 이는 세계의 어느 가톨릭 교회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평신도 자체에 의한 선교방식이었다. 이후 신분과 지위의 구별 없이 수많은 평신도의 열성과 중국, 프랑스에서 밀입국한 선교사들에게 의해 조선 천주교회는 성장하여 나갔다. 하지만 떡잎이 채 자라기도 전에 조선교회는 1791년부터 100여 년 동안 조정에 의해 감행된 조직적인 박해를 감당해야 했다. 초기 천주교에 대한 박해의 이유는 서학(천주교)의 평등사상으로 말미암은 양반위주의 사회질서 파괴와 유학정신의 근간인 조상제사의 거부였으나, 나중에는 정치적 당파싸움과 당리당략의 이권이 개입되었다. 모진 박해 중에도 신자들은 중국의 성직자를 영입하였고, 1836년부터는 프랑스의 파리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을 영입하여 교세를 확장시켰고, 결국 김대건 안드레아(1845년 수품)와 최양업 토마스(1849년 수품) 두 명의 방인 사제를 배출하였다. 천주교에 대한 조정의 조직적인 박해는 신해박해(1791년, 정조 15년)를 시작으로 신유박해(1801년, 순조 1년), 기해박해(1839년, 헌종 5년), 병오박해(1846년, 헌종 12년), 병인박해(1866년, 대원군) 등으로 이어져 외국인 선교사를 포함하여 1만 명이 넘는 교우들이 순교하였다. “순교자의 피는 신앙의 씨앗”이라 했던가? 와중에도 평신도와 선교사의 열성은 식지 않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교우가 됨으로써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교회로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 교회의 순교자들 중 79위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24위는 1968년 10월 6일에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이들 103위 복자는 모두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맞아 방한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시성되어 성인들 반열에 올랐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백삼위 성인들은 한국인 사제 1명, 평신도 92명과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주교 3명과 사제 7명으로 모두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 때 순교하신 분들이다. 그들 가운데 최초의 방인 사목자였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 정하상 바오로가 대표적 인물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 천주교회는 물론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매년 9월 20일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을 지낸다. 오늘은 그래서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과 이웃 때문에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103위 한국 천주교의 순교 성인들을 기념하는 대축제의 날인 것이다. 동시에 우리도 성인들의 순교정신을 높이 기리고 이를 본받아 신앙을 증거할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날이다. 오늘이 그들의 순교정신을 가슴에 새기는 날이지만, 우리나라에 순교자가 어디 이들 뿐이랴. 1784년 조선 땅에 믿음의 씨앗이 뿌려진 이래 100여년의 박해동안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신앙의 씨앗이 되었고,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한 신자들과 박해를 피해 이곳저곳으로 흩어진 신자들의 열정적인 신앙생활과 복음전파를 통해 오늘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 속의 교회로 우뚝 서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또한 무명(無名)의 순교자들께도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신앙을 사람들은 몰라도 하느님께서 다 알고 계실 것이며, 이미 천상의 상급으로 갚아 주셨을 것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과 그분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는, 그를 또한 예수님께서 부끄럽게 여기실 것이기 때문이다.(26절)◆[박상대 마르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