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10월5일(주일) - 연중 제27주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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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8년10월5일(주일) - 연중 제2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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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8-10-04 조회수 :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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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7주일 (가해) [오늘의 복음] 마태 21,33-43 <주인은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복음산책] 하느님과 맺은 무언의 계약 우리는 마태오복음 20장부터 22장까지에서 모두 네 개의 비유를 대면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상경 중에 제자들과 군중을 대상으로 말씀하신 ①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20,1-16), 그리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들려주신 ② 두 아들의 비유(21,28-32)와 ③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21,33-43), 그리고 ④ 혼인잔치의 비유(22,1-14)이다. 네 개의 비유는 모두 하느님 나라에 관한 것으로서 이 나라를 차지할 사람과 그 자격에 관한 은유법이다. 원래 비유는 이야기 자체가 매우 자연스럽게 전개되기 때문에 그것을 듣는 사람은 누구나 쉽게 접근하여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 종종 상식을 벗어나는 요소와 억지가 잠재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수긍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예수님의 비유말씀은 발설한 말 그대로의 자구적(literal) 해석을 따르기보다 말씀이 지향하는 신비적(mystical) 해석을 따를 때 더욱 그 의미가 선명해짐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의미를 간과할 수 없다. 위에 언급한 네 가지 비유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점진적인 상승 강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①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서는 포도밭인 하느님 나라에 구약의 백성과 신약의 백성 모두가 초대되어 똑같은 차원의 대접을 받는다. 이는 자비롭고 선한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의지를 말한다. 아침 일찍부터 포도밭에 가서 일한 사람은 구약의 백성에 해당한다. 정오나 오후 늦게까지 일꾼들이 몰려와 적게 일하였지만 모두가 다 주인과 약속한 똑같은 임금을 받을 때, 먼저 와서 일한 일꾼들의 불만이 크다. ② ‘두 아들의 비유’는 앞서간 비유에서 불공평한 듯 보이는 주인의 처사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입으로만 잘 하겠다고 약속하고 실제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원로들과 수석사제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구약의 율법과 예언을 관리하면서 이것만 붙잡고 있었지, 이를 세워 주신 하느님의 뜻을 간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나중에 마음을 고쳐먹고 하느님의 뜻을 열심히 실천한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오늘 주일복음 말씀인 ③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본래부터 하느님 포도밭의 소작인에 해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원로들과 수석사제들을 포함한 구약의 백성이 선택받은 백성으로서의 특권을 모조리 빼앗기고, 과거의 행실과는 관계없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실히 제때에 주인의 소출을 상납하는 새로운 소작인들에게 포도밭, 즉 하느님의 나라를 넘긴다는 내용이다. 다음 주일복음 말씀에 해당하는 ④ ‘혼인잔치의 비유’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느님 나라의 초대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소일거리에 연연한 나머지 초대에 응하지 않자, 임금이 ‘아무나’ 초대해 놓고, 혼인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기준으로 초대받은 자는 많지만 선택되는 이들은 적다는 내용으로 종말의 심판을 예고한다. 우리의 시선을 오늘 복음에 모아 보자. 어떤 주인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치고, 포도를 저장하여 즙을 짤 수 있는 확도 파고, 망대까지 세워 소작인에게 맡긴다. 주인과 소작인 사이에 계약이 성립된 것이다. 소작인은 수확 철이 되면 자신의 몫을 챙기고, 주인의 몫을 지불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 그런데 소작인들의 욕심이 과히 탐욕에 가까워 주인의 몫을 받으러 온 종들에게 상해를 입히고 살인까지 서슴는 행패를 부린다. 주인은 마침내 자기 아들을 보낸다. 아들만은 존중해 줄 것을 믿었던 주인은 실망한다. 소작인들이 포도밭의 상속자인 주인의 아들까지 죽이고 시신까지 함부로 버린다. 그들의 만행이 극에 달하자 급기야 주인 스스로가 개입하여 악한 소작인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제때에 소출을 지불할 성실한 새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넘기게 된다. 주인의 이러한 처사에 청중인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이미 동의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창조의 마지막에 손수 빚어낸 사람에게 세상을 맡기셨다. 사람 편에서 직접 동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계약은 성립되었고, 사람은 하느님의 몫의 소출을 지불해야하는 의무를 가졌다. 비유 안에서의 소작인은 하느님 야훼와 계약으로 성립된 이스라엘 백성이다. 그들이 계약에 불충실한 삶으로 합당한 소출을 지불하지 않자, 하느님께서는 수많은 예언자를 보내어 이를 시정토록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들을 속속 죽여 없애버렸으니 말이다. 여기까지는 과거사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성자 예수님을 보내지만, 그들은 상속자인 하느님의 아들을 마구 대하며 결국 십자가에 처형한다. 이는 복음에서 현재의 일이며, 진행형이다. 이제 머지않은 종말에 이르러 하느님께서는 제때에 소출을 내는 새로운 백성에게 하늘 나라를 넘긴다는 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로서,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나라이다.(42절, 시편 118,22-23) 사람에게는 생명과 능력을 주시어 이 아름다운 세상에 살게 하신 하느님과 태어나면서부터 무언의 계약을 맺었다. 사람은 하느님께 인생의 수확에서 하느님 몫의 소출을 제때에 바쳐야 하는 의무를 가졌다. 소출을 바치라는 하느님의 청구서가(bill)는 다양한 모양으로 사람에게 접수된다. 하지만 복음에 등장하는 악한 소작인처럼 자신도 모르게 욕심과 탐욕에 빠져들어 그 청구서를 무시하고 살아간다. 하느님의 몫의 소출을 바치기는커녕 세상이 몽땅 자신의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그들에게 세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는 동안 뜻밖의 재앙을 당하거나 나이가 들어 힘이 없어지면 소출을 바치기엔 너무 늦어버린다. 사는 동안 항상 감사하고, 남을 배려하며, 제때에 인생의 열매를 하느님께 바칠 줄 아는 그런 소작인의 삶은 종말에 하느님 나라를 영원히 상속받을 것이다.◆[박상대 마르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