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7월27일(주일) - 연중 제1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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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17주일 (가해) [오늘의 복음] 마태 13,44-52 <또는 13,44-46>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47) “또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복음산책] 보물과 진주, 그리고 그물에 비유된 하느님 나라 우리는 지난 두 번의 주일에 걸쳐 마태오복음 13장의 비유설교 중에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밀과 가라지의 비유’ 말씀을 들었다. 이 비유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성장하는 과정에 관한 신비를 표상한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하느님의 나라가 그분의 말씀인 씨앗 하나에서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씨앗을 받아들인 신앙인 개개인의 내면에서 성장해가는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마음의 밭과 토양이 요구된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는 이미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가 죄악에 허덕이는 현 세상에 봉착하여 빚어내는 긴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종국(終局)에 가서 완성될 하느님의 나라가 그 성장 과정에서는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을 함께 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선인들 사이에 끼어있는 악인들을 제거하는 작업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권한에 속해 있으며, 수확 때가지 기다려주시는 하느님의 자비, 그러나 수확이 시작되면 엄중한 선별의 심판을 행사하는 하느님의 정의를 암시한다. 이 비유들을 통하여 신앙인인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에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잘 깨닫고, 깨달은 바를 실제로 실천하며, 그 나라를 세상의 무엇보다 귀중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또 그 나라를 차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닌다. 물론 강제적인 의무는 아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는 강요에 의해 성장하는 나라가 아니라 죄와 악으로부터 해방된 백성에게 주어지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 선물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 사람만이 그 진실을 알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복음의 비유들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7개의 비유설교 중에서 마지막 세 개의 비유에 해당하는 ‘밭에 묻힌 보물의 비유’, ‘값진 진주의 비유’, ‘그물의 비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다른 복음서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마태오복음 고유의 비유로서 아주 짤막한 문장으로 비유가 원하는 명쾌한 뜻을 전달하고 있다. ‘보물의 비유’는 어떤 사람이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을 발견하고는 가진 것을 다 팔아 보물이 묻혀 있는 그 밭을 산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하루의 노동으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가난한 소작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지주(地主)의 밭을 갈다 보물을 발견하고는 다시 묻어둔다. 보물이 묻혀있는 그 밭이 자기 소유가 아니므로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자기 소유로 만든다는 것이다. ‘진주의 비유’는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다가 좋은 진주를 발견하면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진주를 산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어떤 장사꾼’은 앞의 소작인과는 달리 장사를 통해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가진 부자일 수도 있다. 그가 늘 좋은 진주를 찾아다닌다는 것은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구도자에 비유될 수도 있다. ‘그물의 비유’는 바다에 그물을 쳐서 온갖 것을 끌어올리는 것(47절)에 관한 비유로서, 이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24-30절)와 친척간이다. 바다에 그물이 쳐져 있는 동안에는 온갖 것이 그물에 걸려드는 이치와 같이 수확 때까지는 같은 밭에서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된다. 그러나 추수 때에 밀과 가라지는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고 운명을 달리 하듯이, 그물을 끌어올리고 나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은 가려진다.(48절) 이미 모세의 율법이 명기하고 있듯이 식용으로 금지된 것들은 따로 골라 아쉽지만 버려야 하는 것이다.(뱀장어, 메기 등: 레위 10,10-12 참조) ‘그물의 비유’는 결국 종말에 펼쳐질 심판을 암시하는 상징적 행동이다. 최후의 심판 때에는 천사들이 심판관이신 인자(人子)의 명을 받들어 선인(善人)들 속에 끼어 있는 악인(惡人)들을 솎아낼 것이다. 악인들에게는 불구덩이가 그들의 무덤이 될 것이며, 거기서 그들이 하는 일은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것뿐이다.(49-50절)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하늘 나라가 보물이나 진주 그 자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보물과 진주는 하늘 나라에 대한 비유 언어(比喩言語)일 뿐이다. 물론 하느님의 나라를 귀한 보물이나 값진 진주로 생각할 수도 있으며, 나아가 하느님을 그런 좋은 보물이나 진주, 즉 귀한 물건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를 그런 보물과 진주에 빗대어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과 바꿀 수 있다고 하셨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은유법(隱喩法)임을 알아야 한다. 하늘 나라와 보물(진주)은 서로 아무 관련이 없지만,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에 보물이나 진주는 귀한 것이고 좋은 것이므로 하늘 나라를 그것에 비길 수는 있다. 그러나 하늘 나라는 결코 인간의 소유 가능한 대상물이 아니다. 하늘 나라는 우리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 소유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늘 나라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더욱 더 그렇다. 하느님은 사물(事物, res)이 아니라 위격(位格, persona)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위격이시라는 말은 마치 인간이 가진 인격(人格)과 흡사하다. 인격은 인간에게서 비교적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성격이나 경향, 또는 자아의식으로서 하느님의 위격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이 돈으로 몸을 살 수 있어도 마음을 살 수 없는 것과 같이 하느님의 위격도 그런 것이다. 하느님의 위격은 오직 그분과의 친밀한 공동체를 이룸으로써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그 공동체 안에서 그분의 하늘 나라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복음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하느님의 나라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보다 더 귀중하고 소중하게 깨닫고 사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 깨달음을 얻은 자는 가난한 소작인처럼 보물을 발견하고 그렇게 기뻐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비유들을 다 알아들었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모두가 그렇다고 대답한다.(51절) 예수께서는 비유법을 통한 하늘 나라에 관한 교육이 내심 잘 되었다고 흡족해 하신 모양이다. 제자들을 바로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52절) 라고 칭하시니 말이다. 곳간에서 새 것을 꺼낸다는 것은 이제 새로이 등장한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헌 것을 꺼낸다는 것은 구약의 율법과 예언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곳간에서 무엇을 꺼내어 쓰든 그것은 자기 스스로에 달렸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7가지의 다양한 비유를 통하여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교육을 이토록 잘 받은 우리 신앙인들이 그 나라를 위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를 수가 있을까?◆[박상대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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