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8월03일(주일) - 연중 제18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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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18주일 (가해) [오늘의 복음] 마태 14,13-21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13)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배를 타시고 따로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여러 고을에서 그 소문을 듣고 군중이 육로로 그분을 따라나섰다. 1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15)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 곳이고 시간도 이미 지났습니다. 그러니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십시오.” 16)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17) 제자들이 “저희는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 가져오너라.” 하시고는,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20)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21)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가량이었다.◆ [복음산책] 시비지심을 능가하는 측은지심 요한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갈릴래아에서 자신의 공적 생활을 시작하신(마태 4,12) 예수님께서 오늘은 그의 죽음소식을 접하시고는 배를 타고 혼자 한적한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다. 아마 요한의 죽음을 애도(哀悼)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었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 육로를 통해 몰려들었다. 예수님께서 계신 곳은 어디든지 사람들로 붐빈다.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은 분명히 그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으로 마음이 심란했을 터인데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거절하지 않고, 그들의 모든 청을 들어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들이 데리고 온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신다. 그들을 향한 측은한 마음이 드셨기 때문이다. 타인의 어렵고 가엾은 처지에 대한 측은한 마음은 ‘사람다운 사람’의 가장 기본 태도이다.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던 맹자(孟子, BC. 372-289?)도 이미 사람이 타고난 착한 본성의 발로를 사단(四端)으로 보았다. 사단은 군자(君子)가 행해야 한다는 네 가지 품성인 사덕(四德)에 해당하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에서 우러나는 본성적인 네 가지 마음씨를 말한다. 사단은 곧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의(義)에서 우러나오는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예(禮)에서 우러나오는 남을 공경하고 겸손히 사양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지(智)에서 우러나오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가릴 줄 아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맹자가 인간의 본성에서 이렇듯 좋은 사단의 마음씨가 우러나온다고 하니 이를 갈고 닦아 더욱 빛내는 일은 개인의 몫일 것이다. 오늘 주일의 복음은 사단의 마음씨 중에서 가장 출중한 측은지심이 예수님을 통해 한층 돋보이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데려오고 스스로 찾아온 병자들을 예외 없이 그저 가엾게 보시고 모두 고쳐주셨으니 말이다. 그뿐 만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들 모두의 끼니까지 걱정하여 챙겨주신다. 수많은 군중이 육로를 통하여 호젓하게 계시는 예수님을 찾아 몰려 왔으니, 많이들 피곤했을 것이다. 게다가 시간 가는 줄도, 해가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을 것이다. 시간은 흘러 저녁때가 되었다. 동시에 제자들에겐 끼니걱정이 함께 엄습하였다. 제자들은 그나마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기 전에 군중을 해산시켜 끼니를 각자가 해결하도록 할 참이었다. 시비지심의 발로인가? 옳은 판단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제자들의 시비지심보다 예수님의 측은지심이 앞선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16절)는 것이다. 궁여지책 끝에 제자들이 마련한 것은 고작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뿐, 자기들이 먹기에도 부족한데,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아찔하고 눈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어떻게? 조족지혈(鳥足之血)도 안 되는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누구 입에 붙이란 말인가? 제자들이 내린 시비지심의 결론은 예수님께 청하여 사람들을 헤쳐 물리는 것이었지만, 예수님의 마음속 생각은 달랐던 것이다. 쉽게 말하면 측은지심은 기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한낱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의 양(量)이 문제가 아니라, 지치고 굶주린 백성을 결코 이대로 돌려보낼 수 없다는 예수님의 측은지심이 기적을 불러온 것이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아무리 적고 작은 것이라도 예수님의 마음과 손 안에서, 하늘을 향한 찬미의 기도 속에서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을 수 있는 풍요를 창조한다는 데 있다. 4복음서 전체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빵의 기적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마르 6,32-44; 마태 14,13-21; 루카 9,12-17; 요한 6,1-15)과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마르 8,1-9; 마태 15,32-39)의 두 가지 형태로 전해진다. 보다시피 오천 명의 기적은 4복음서 모두가 전하고 있으나, 사천 명의 기적은 마르코와 마태오만 전하고 있다. 물론 마르코복음이 구전(口傳)이나 예수어록의 원전(原典)에 제일 충실했을 것이고, 마태오와 루카복음은 저자의 의도에 따라 다소 수정을 가하였고, 요한복음은 원전의 기적사화를 토대로 완전히 독창적인 신학을 펼치고 있다. 마태오복음에서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기(4,12-18-35) 중 비유설교(13장)와 공동체설교(18장) 사이에 등장하는 주된 모티브는 ‘빵’이다. 적어도 마태오복음 14,13에서 16,12절까지에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이끌어 가는 핵심적인 사상이 바로 ‘빵’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은 우선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14,13-16)으로 시작하여, 그 가운데 사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15,31-39)을 삽입하고, 마지막 부분에 가서 두 가지 빵의 기적에 대한 의미해석(16,9-12)으로 마무리 된다. 복음이 전해주는 빵의 기적은 다른 기적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메시아적 특성을 드러내는 기적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많은 기적들을 체험하였다. 자신들의 평범한 이론과 습관들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예수님은 마치 평범한 일처럼, 그냥 우리가 늘 생각하고 행하는 패턴처럼 여기신다. 가진 것이 많건 적건 간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사가가 단순한 빵의 기적을 가지고 생명의 빵(성체성사신학)을 구상하거나(요한 6장), 마르코복음에는 없는 ‘여자와 어린아이들’(21절)을 끌어들여 누구나 참여하는 미사성제를 마태오복음사가가 구상하든지 간에, 오늘 예수님의 복음은 가진 것이 많든 적든 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하며 서로 나누라는 것이다. 숨겨두면 어둠이 되고, 내어놓으면 빛이 되듯, 무엇이건 서로 나누면, 모자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채워 주실 것이다. 오늘은 빵의 기적으로 물질적인 모자람을 채워 주셨지만, 머지않아 자신의 몸을 내어놓는 죽음과 부활의 기적으로 영혼의 모자람을 채워 주실 것이다. 이로써 세례자 요한의 죽음소식을 접하고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셨던 예수님의 속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다. 예수님께서는 빵의 모티브를 통하여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서서히 예고하시려는 것이다.(마태 16,13 이하 참조)◆[박상대 마르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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