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11월9일(주일) -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 복음 묵상

복음 묵상

[] 2008년11월9일(주일) -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작성일 : 2008-11-15 조회수 : 2,014

본문

◉ 연중 제32주일 -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가해) [오늘의 복음] 요한 2,13-22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복음산책] 너희가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이니… 오늘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로마교구의 주교좌인 ‘라테라노 대성전’의 봉헌 축일을 기념한다. 로마에는 그 규모를 보아 4개의 대성전이 있다.(성 베드로, 성 바오로, 라테라노, 성 마리아) 그런데 성 베드로 / 바오로 대성전 봉헌(11월 18일)과 성 마리아 대성전 봉헌(8월 5일)은 기념일로 지내고 유독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일을 ‘축일’로 지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역사가 답한다. 기원후 313년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274-337)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하여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종식시켰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를 공인한 것이다. 황제는 후속 조치로 324년 라테라노 대성전을 건립하였고, 같은 해 11월 9일 실베스터 1세 교황(314-335)이 축성하여 ‘구세주’께 봉헌하였고, 로마교회의 주교인 교황의 주교좌성당으로 삼았다. 이로써 300년 박해기간 동안 지하교회에 숨어 신앙생활을 영위하던 그리스도인들이 처음으로 공식적인 교회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대성전에 인접한 라테라노 궁전에 4세기부터 14세기까지 약 1천년 동안 역대 교황들이 거주하였다. 라테라노 대성전은 그 후 ‘로마와 전 세계 모든 교회의 어머니요 머리’ 라는 명칭으로 베드로 성좌에 대한 전 세계 교회의 존경과 일치의 표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12세기부터는 ‘세례자 요한의 대성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후 수세기를 걸쳐 화재, 지진, 약탈로 말미암아 훼손된 부분을 복구하였고,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이 대대적으로 증축하여 ‘가장 거룩한 구세주 예수’께 성전을 봉헌하고, 11월 9일을 봉헌축일로 확정하였다. 오늘날 교황은 성목요일 주님 만찬미사를 이곳 대성전에서 집전한다. 이처럼 라테라노 대성전은 전 세계 그리스도교의 첫 공식적인 교회이며, 로마교구의 교구장인 교황의 주교좌성당이다. 우리가 오늘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을 지낸다고 해서 대성전의 건축물을 놓고 기념하거나 축하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교황의 주교좌성당인 라테라노 대성전을 중심으로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믿음과 사랑의 일치를 기원하고 기념하는 축일이다. 오늘은 곧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 신비체요, 신앙의 공동체인 우리 전체교회 및 개별교회의 축일인 셈이다. 이 축일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전 정화하신 사건에 관한 복음을 듣게 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성전 정화는 네 복음서 모두가 전하고 있는 사건이다.(마태 21,12-13; 마르 11,15-18; 루가 19,45-46; 요한 2,13-22) 그런데 공관복음서들이 이를 예수님의 공생활 말기에 있었던 사건으로 전하고 있는 데 비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에 두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예수님의 성전정화사건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 발생했던 간에 그 내용은 같다. 요한복음사가는 이 사건을 예수님의 공생활 서두에 둠으로써 성전정화의 의미가 공생활 시작과 큰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 예수께서 의로(義怒)와 열정으로 정화하시는 예루살렘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와 삶의 모든 것이었다. 그 안에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의 궤가 모셔져 있었고, 이는 야훼 하느님의 현존과 그들의 선민(選民)과 구원(救援)을 상징하였다. 그러나 성전의 참된 상징은 장사꾼들의 지나친 상혼(商魂)에 가려있었고, 그 뒤엔 제사장들의 권력과의 결탁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한 사역(使役)의 시작에서 예수님은 빗자루를 손에 들었다. 이는 유대교를 말끔히 청소하기 위함이다. 구약(舊約)을 폐기하고 신약(新約)을 세우시기 위함이다. 무슨 권한으로 이런 정화행위를 하느냐(18절)는 유다인들의 비난에 맞서, 예수님 스스로가 ‘새로운 성전’임을 암시한다. 유다인들이 46년이나 걸려 지었던 예루살렘성전을 예수님께서는 단 사흘 안에 세우시겠다고 장담하였다. 물론 그분이 세우시려는 성전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20절)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세우시기 위하여 이제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것이다.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예수님 스스로가 새로운 성전이 되신다는 것은 유다인들은 물론이고, 제자들까지도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된다. 신약의 참된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바치는 건물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몸이다. 신약의 성전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우리 자신들의 몸이다 물론 신앙의 공동체가 하느님을 찬미하고 기도하며 성체성사를 거행하기 위하여 함께 모이는 성당 또한 하느님의 성전이다. 성전은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와 사랑을 체험하고, 우리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는 곳이다. 성전은 무엇보다 기도하는 곳이다. 기도가 없는 성당은 성전이기보다 하나의 건물이 되고 만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드렸던 기도, 예수님의 세상에 대한 열정으로 선포하셨던 말씀과 성사, 이것이 없는 성당은 하나의 건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목자들은 물론 신자들도 예수님처럼 자주 손에 빗자루를 들고 우리의 성전과 마음의 성전을 정화하여야 한다. 이제는 ‘우리의 몸이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1코린 6,19)이며, ‘우리가 살아계신 하느님의 성전’(2코린 6,16)이기 때문이다.◆[박상대 마르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