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5월18일(주일) - 삼위일체 대축일 >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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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5월18일(주일) - 삼위일체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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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8-05-16 조회수 : 2,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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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위일체 대축일 (가해) [오늘의 복음] 요한 3,16-18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음산책] 삼위일체 하느님과 교회 교회는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강림 대축일로 부활시기를 마감하고 다시 연중시기로 접어들면서,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낸다. 이는 하느님께서 본체로서는 한 분이시나 위격으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라는 신비를 밝히는 동시에, 세상의 창조와 구원 그리고 구원받은 세상의 성화를 주관하시는 성삼 하느님 업적의 종합적인 축일이다. 참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며, 오늘 화답송의 응송처럼 ‘주님은 칭송과 드높은 찬양을 영원히 받으실 분이심’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낼 적마다 함께 떠오르는 사건들이 있다. 그것은 삼위일체 교리정립에 앞서 양자설(養子說; Adoptionism)이나 성자성부예속설(隸屬說; Subordinationism) 같은 이단을 파문해야만 했던 아픔과, 성령의 출처를 규정하는데 있어서 “ex patre filioque” 즉, ‘성부와 성자로부터’를 주장한 서방교회와 ‘성부 만으로부터’를 주장한 동방교회가 서로 갈라서야 했던 아픔들이다. 뿐만 아니라 “신은 죽었다.”고 했던 프리드리히 니체나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고 했던 칼 마르크스의 주장이 본격적으로 신존재를 부정하고자 하는 철학적 논리라기보다는 ‘신의 부재(不在)’를 체험한 처절한 인간실존의 한 모습이 가져다 준 결론이란 점이다. 지난날 코소보 난민의 인권옹호를 위한 나토 연합군의 유고슬라비아 폭격의 원인이 따지고 보면 같은 하느님을 믿는 코소보의 이슬람교인과 유고슬라비아의 정교도와의 대립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공습을 주도했던 나토 가입국들 대부분이 또한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교 인들이라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오늘날 아직도 분쟁지역인 이스라엘을 둘러싼 유다인과 아랍인과의 대립도 결국은 종교가 그 불씨다. 인권을 위한 국제적 질서확립이라는 미명아래, 수천 년이 지나도록 수그러지지 않는 이사악에 대한 이스마엘의 적대감 때문에 종교도 하느님도 결국은 뒷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신학의 역사는 인간이 하느님의 신비를 이성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들의 연속이다. 수많은 철학적 개념들과 형이상학적 명제들이 하느님의 신비를 깨닫는데 도움을 주지만, 하느님은 결국 신비 자체로 계신다. 본체(本體)는 하나인데 위격(位格)이 셋이라는 말을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알아듣기 힘든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한 길도 되지 않는 사람 속도 모르는데 하물며 우주보다 더 크고 깊으신 하느님의 속을 어찌 알겠는가? 인간의 하느님에 대한 이성과 상상력이 아무리 뛰어난다 하더라도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의 언어와 표현 안에 머무를 뿐이다. 하느님이 인간의 언어와 표현으로 포착되는 순간, 하느님은 그 안에 갇히게 되므로 그는 이미 하느님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삼위일체 교리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세 위격의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느님께서 본체로서는 하나일 수 있는 원리가 바로 사랑이라는 개념이다. 즉, 사랑에 의한 일치라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 살 수 없다. ‘함께’, 그리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재물이나 권력 등이 아니라 사랑을 통한 일치와 협력이다. 부와 모와 자녀가 서로 일치해야만 단란한 가정을 이룰 수 있고, 노(勞)․사(使)․정(政)이 서로 협력해야만 안정된 사회와 국가를 이룩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도 지(知)․덕(德)․체(體)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만 참되고 진정한 사람일 수 있다. 오늘날 20억 이상의 인구가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라지만 그 가운데는 세상의 온갖 악을 그저 방관하는 하느님, 구름 위에서 침묵으로만 내려다보는 하느님을 믿는 신자도 있고, 또 그 때문에 사랑이신 하느님을 불신하고 존재마저 부정하는 신자들도 많을 것이다. 오늘 삼위일체 하느님을 경축하는 교회는 하느님이 우리들 세상과 무관하신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선포해야 한다. 그것도 교의내용으로서가 아니라 삶으로서 보여 주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