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11월25일(주일) - 그리스도 왕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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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 왕 대축일 (다해) [오늘의 복음] 루카 23,35-43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35) 백성들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복음산책] 한 사람의 강도만이 예수님을 왕으로 알아보다. 오늘은 연중 제34주일로서 한 해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이며,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오늘 축일을 정확히 말하면 ‘우주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축일’(Domini Nostri Jesu Christi, Regis Universorum Solemnitas)이다. 오늘 축일은 1925년 교황 비오 11세가 회칙 ‘과스 프리마스’(Quas primas)를 통하여 제정하였다. 1925년은 325년 가톨릭교회의 첫 공의회로서 ‘니체아 신경’을 선포한 니체아공의회 개최 1,600주년의 해였다. 교황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무참하게 파괴된 참담한 세계상을 니체아 신경을 바탕으로 다시 세우고자 했다. 교황은 우주와 세상의 참된 자유와 평화, 그리고 안정된 질서란 오직 그리스도를 왕 중의 왕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절대적인 통치권 아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선포하려했던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통치권을 현세적으로만 생각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 대축일은 제정할 당시에는 10월 마지막 주일에 지냈으나, 1969년부터 오늘과 같이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에 기념함으로써 우주만물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길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중개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대략 서기 30년 4월 7일 금요일 오후 예루살렘 북쪽 성벽 밖에 자리 잡은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을 때를 보도하는 대목이다. 반나체로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신 예수, 온 몸은 채찍질과 상처와 피투성이고, 가시관을 쓰다 못해 머릿속에 박고 있는 몰골하며, 신의 모습도 인간의 모습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참담한 광경이다. 백성의 지도자들인 대제관들과 바리사이 율사들을 물론 형을 집행하는 로마 군인들에다 같이 달려있는 강도까지 십자가의 예수를 향하여 맘껏 조롱과 희롱과 모욕을 퍼붓고 있다.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목이 적힌 명패도 한 몫 거들고 있다. 하필이면 왜 이 대목을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복음으로 택한 것인가? 오늘 대축일의 의미에 잘 부합하는 자료가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단 한 마디의 말씀으로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신 기적사화를 놔두고라도, 풍랑을 꾸짖어 잠재운 기막힌 기적(루카 8,22-25)도 있고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도 있는데, 왜 예수 생애의 가장 비참한 이 대목을 복음으로 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 찾아보자. 루카는 원전이 될 마르코복음(15,22-32)을 참조하면서, 마르코가 아주 짤막하게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 양편의 두 강도(27절, 32c절)에 관한 이야기를 크게 확대하여 편집하였다.(39-43절) 이 대목이 바로 문제를 푸는 열쇠이다. 루카는 두 강도를 갈라,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모욕하는 편에 세웠으며, 다른 하나는 그 동료강도의 무례함을 꾸짖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참회자로 세웠다. 바로 그가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42절) 하고 간청하였다는 것이다. 참회자의 간청은 헛되지 않았다. 그것이 마지막 순간이었다 할지라도 죄인이 뉘우치기만 하면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받는다는 것은 루카복음의 한결같은 주제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43절) 하고 뉘우치며 간청하는 강도에게 용서와 자비를, 그리고 구원을 한꺼번에 베푸셨다. 갖은 모욕과 조롱이 난무하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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