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10월28일(주일) - 연중 제30주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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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10월28일(주일) - 연중 제30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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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10-28 조회수 : 2,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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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10월28일(주일) - 연중 제30주일 (다해) [오늘의 복음] 루카 18,9-14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9) 예수님께서는 또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복음산책]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오늘 복음의 비유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기도를 올바르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면서, 어떤 기도가 하느님께 가납되는 지를 가르쳐 주신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대조되는 요소들을 지닌 인물들을 모으고 그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은 풍자가 지닌 전형적인 틀이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예수께서는 당대 유대인 종교사회의 두 극단의 인물을 묘사하신다.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 온 두 사람은 정반대의 태도를 보인다. 하나는 자신 만만한 태도로 남들로 하여금 보라는 듯이 꼿꼿이 서서 기도하고, 다른 하나는 거의 숨다시피 멀찍이 서서 눈을 내리 깔고 가슴까지 치면서, 마치 기도하러 온 것조차 부당하다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모습은 우리 사이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우리는 어떤 인물에 더 가까울까? 바리사이의 모습일까, 아니면 세리의 모습일까? 아니면 기도와 아주 거리가 먼 사람인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어떤 기도가 참다운 기도인가? 소신학교 때부터 배운 바에 의하면 참다운 기도는 몇 가지 필요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기도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림이다. 그 다음에는 잘못을 살펴 통회(痛悔)하고 정개(定改)한다. 그리고는 자비와 용서를 구한다. 다음에 필요한 청원을 드린다. 마지막에 다시금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으로 기도를 마친다. 이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기도를 분석하여 보자. 먼저 바리사이의 기도이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11-12절) 어떤가? 그는 먼저 찬양과 감사를 드렸다. 그런 다음 자신이 정직하고 음탕하지 않으며, 세리 같은 사람에 축엔 끼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그 근거로 일주일 두 번의 단식과 십일조의 준수를 제시한다. 이것이 바리사이의 기도이다. 여기에는 잘못의 통회와 정개도, 자비와 용서를 구함도 없고, 청원도 없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남들이 보라는 듯이 서서 기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음은 세리의 기도를 보자. 세리의 기도하는 자세는 바리사이의 그것과는 아주 극단적인 차이를 보인다. 그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를 시작한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13절) 세리의 기도자세에는 감사의 언급은 없으나 찬양을 드림은 이미 내포되어 있다. 기도의 내용은 짧지만,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하는 말 속에 성찰과 통회와 정개, 그리고 자비와 용서를 구함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다른 무엇보다 자비를 청원하고 있다. 바리사이는 자신을 위해 아무 것도 청하지 않는다. 그가 기도라며 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세심하게 지키고 있는 종교적인 실천들에 부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들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며, 결국 자기 자신에게만 큰 관심을 기울인다. 나아가 다른 사람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큰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에게 하느님은 오직 자신의 놀라운 공로를 빠짐없이 인정하시는 분일뿐이다. 이렇게 자신에 대해 확실하고 경건한 바리사이파 사람과 비교할 때, 세리는 감사를 드리지도 못하고, 그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할 뿐이다. 그는 심판관 앞에서 자신의 무고를 증명할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그저 심판만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세리는 전적으로 자신을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감히 기도할 자격도 없지만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죄인이나마 은총의 선물로 자신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