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11월11일(주일) - 연중 제3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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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32주일 (다해) [오늘의 복음] 루카 20,27-38 <20,27.34-38> <하느님께서는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 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복음산책] ‘순수현재’의 하느님 예수님의 그리 길지 않을 예루살렘에서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성대한 예루살렘 입성이 있었고, 올리브 산 중턱에서 예루살렘의 불행을 예고하셨다. ‘강도들의 소굴’이 된 성전을 정화하신 일로 대사제와 율사들과 원로들과 ‘그럴 권한’에 대한 논쟁과 세금문제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루카 19,28-20,26) 오늘은 복음에 아주 드물게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등장하고, 예수께서 이들과 함께 부활에 관하여 논쟁을 벌인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누구인가? 사두가이파는 기원 전 2세기부터 존재하는 바리사이파, 에세네파와 함께 유대교 파벌 중의 하나로서 예루살렘의 귀족 제관들과 사회의 부유한 기득권층으로 구성된 집단이다.(사도 4,1; 5,17) 정치적으로는 로마제국과의 타협을 통해 현세적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무리들이며, 오로지 현세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눈에 보이는 현실이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었다. 따라서 교의적(敎義的)으로는 영혼의 불멸이나 육체의 부활(이사 24-27장; 다니 12,1-3; 2마카 7장) 및 천사와 영적 존재를 믿지 않았고(마르 12,18; 루카 20,17; 사도 23,18), 오직 부유하고 풍요한 현세의 평안만을 추구하였다. 당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대항자로서 잘 알려진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기록된 율법, 즉 모세오경만을 받아들여 모세율법의 자구(字句)를 고집하였으므로, 바리사이들이 중시하는 구전(口傳)의 법(法)을 인정하지 않았다. 내세(來世)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예수에 대하여는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격한 증오를 보였고, 예수를 단죄하고 처형, 사도들을 박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무리들이다. 이렇게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실로 극단적인 예를 들어 예수를 곤욕에 빠뜨리려 하였다. 그들이 내세운 근거는 아들 없이 남편이 죽으면, 그의 아내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여 대를 잇게 하는 수혼법(嫂婚法)이다.(신명 25,5-10; 창세 38,8) 그러나 사두가이파의 맹점은 내세(來世)를 현세(現世)의 연장으로 생각한 데 있다. 예수께서는 우선 죽은 후에 맞이할 새 세상이 이 세상의 연장이 아니라고 가르치신다. 실제로 일어날 일은 우리의 상상 밖이다. 내세는 현세의 모든 생명질서가 무너지고, 죽음 자체가 완전히 극복되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내세의 부활은 이승의 차원과 전혀 다른 하느님의 영광과 그분의 생명에 하는 것이다. 현세의 질서와 시간과 공간, 즉 물리(物理)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우리가 부활의 차원의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에게는 시간과 공간의 영역이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져 있으나 하느님에게는 오직 현재의 시간과 공간만이 존재한다. 이를 일컬어 ‘순수현재’(純粹現在, pura praesentia)라고 한다. 그분은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시작이 있다면 과거가 있는 것이고, 끝이 있다면 미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이 비록 죽어 과거의 인물이 되었더라도 그들의 하느님이시며, 죽은 이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느님이신 것이다.(탈출 3,6) 즉,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38절) 이 말은 하느님 앞에 모든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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