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12월9일(주일) - 대림 제2주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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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12월9일(주일) - 대림 제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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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12-06 조회수 : 2,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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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 제2주일 (가해) [오늘의 복음] 마태 3,1-12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1)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2)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3)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4) 요한은 낙타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9)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복음산책]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예수 그리스도의 ‘벌써 오셨음’과 ‘다시 오심’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대림시기의 제2주간을 맞이하면서 대림환의 두 번째 촛불을 밝혔다. 대림 제1주일의 말씀주제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겨냥한 것으로서 세상구원의 성취자이신 그리스도의 재림예고와 그에 대한 준비의 태도로써 ‘항상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는 경고였다.(마태 24,37-44) 오늘 대림 제2주일의 말씀주제는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직접적인 약속으로서 이사야의 예언(40,3-5)이 세례자 요한의 출현과 그가 선포하는 회개의 세례에 의해 성취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러고 보면 대림시기가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불안과 초조, 두려움과 긴장, 단식과 고행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막연한 기다림’이기보다는 메시아 예언의 성취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쁨과 희망으로 준비하는 ‘충실한 기다림’의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태오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와 잉태, 탄생경위와 성장에 관한 이야기(1-2장)를 제외한다면 오늘 복음의 본문이 바로 마태오가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이다. 복음의 시작은 세례자 요한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는 복음의 시작이 세례자 요한의 출현으로 그 막을 올린다는 것이다. 타락한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역사에서 그 중심은 단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차지하신다. 그러나 그 중심의 바닥에 세례자 요한이 서 있다. 즉, 구원역사의 시간상 흐름으로 따지자면 요한이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의 그 가운데 서 있다는 말이다. 요한이 곧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이며, 동시에 신약의 준비자 및 선구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 안에서 구약의 모든 예언(豫言)이 성취됨을 보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언의 핵심인 구원이 성취됨을 보게 된다. 요한 세례자가 알리는 그 시작이 오늘 복음에는 막연히 ‘그 무렵’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 무렵은 통상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려 했던 시기이다. 루카복음은 이 시기를 아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루카는 세례자 요한의 출현과 요한이 예고하는 메시아 시대의 도래가 로마제국의 황제 티베리우스 치세 15년, 즉 기원후 27~28년경임을 밝히고 있다. 루카가 제시하는 정확한 시기에 비하여 마태오가 막연한 ‘그 무렵’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각도에서의 해석이 있을 수 있겠다. 세례자 요한의 출현에 관한 정확한 시기의 언급이 이를 역사 안에서의 한 사건으로 만든다면, ‘그 무렵’이라는 표현은 역사 속의 어느 때든 마음먹는 때, 필요한 때, 그래서 오늘 복음이 성탄과 또 미구에 있을 재림을 준비하는 모든 이를 향한 복음이 되게 만든다. 세례자 요한이 출현하는 ‘그 무렵’은 결국 ‘광야’라는 장소와 기막히게 어울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의 도래와 메시아의 행차 길을 닦으러 오는 특사가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고 믿었다.(말라 3,1) 그런데 그가 궁궐이 아닌 광야에 나타날 줄이야 누가 짐작을 했겠는가? 광야에 사는 이가 입고 다니는 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