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12월16일(주일) - 대림 제3주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 복음 묵상

복음 묵상

[] 2007년12월16일(주일) - 대림 제3주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작성일 : 2007-12-15 조회수 : 2,179

본문

◎ 대림 제3주일 (가해) - 자선주일 [오늘의 복음] 마태 11,2-11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2) 그런데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7)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10)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복음산책]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의 갈등 대림환의 세 번째 촛불이 환히 타올랐다. 대림환에 꽂혀있는 분홍색 초에 불을 붙인 것이다. 대림환을 자세히 살펴보면 네 개의 초 가운데 두 개는 보라색, 하나는 분홍색, 나머지 하나는 흰색이다. 오늘 대림 제3주일에 기쁨을 상징하는 분홍색 초를 켠 이유는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대림 제3주일을 ‘가우데떼’(Gaudete, 기뻐하여라!) 주일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오늘 미사의 “기뻐하여라. 거듭 말하니,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다.”(필리 4,4-5 참조)라는 입당송에서 따온 것으로서 성탄의 기쁨을 미리 맛보자는 전례적 의도와 배려에서 기인한다. 사제는 오늘 자주색 제의 대신에 장미색 제의를 입고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가우데떼’의 전례적 의미를 살릴 수도 있다. 오늘 복음은 기뻐하라는 ‘가우데떼 주일’의 전례적 의미와는 달리 다소 무겁게 시작한다. 시커먼 벽에 촘촘한 창살과 어둡고 칙칙한 공간, 사해 동쪽 마캐루스 요새의 감옥에 세례자 요한이 갇혀있다.(플라비우스, 유대고사 18,116-119 참조)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 자기 삶의 모든 것을 광야에 쏟아 부은 사람, 오직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태어난 사람, 세례자 요한이 이제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된 것이다. 아무도 그를 구해주지 않고, 하늘나라가 도래한 표징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감옥은 광야에서만큼 생각하기에 좋은 곳이다. 감옥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꿈꾸며, 질문을 던지고 의문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메시아를 위한 선구자로서 그 길을 닦고 밝히며, 회개의 설교와 세례를 베풀던 일이 다 무엇인가? 감옥이라는 거동의 제한을 받는 공간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기 제자들을 시켜 예수께 반신반의(半信半疑)의 질문을 던진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3절) 우리는 선구자의 의심과 의문을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 또한 삶의 기로에서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또 선택한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의문을 던지며 의심을 품는가? 이것일까, 아니면 저것일까 하는 갈등 말이다. 세례자 요한만큼 그 제자들도 의심과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3절) 이 질문은 우선 세례자 요한의 질문이었고, 동시에 그 제자들의 질문이며, 나아가 이스라엘 전체의 질문이며, 오늘날 현대인의 질문이기도 하다. 질문이 이랬다면 대답은 통상 “그렇다. 맞다.” 혹은 “아니다. 틀렸다.”라는 둘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그런 모양이 아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4절)는 것이다. 그들이 예수에게서 본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자기들 눈으로 마귀 들린 사람들이 멀쩡해지고 소경이 보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이 전하여지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이사 29,18; 36,5-6; 61,1 참조) 예수님의 참된 대답은 곧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6절)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본 대로 생각하고, 배운 대로 행동한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는 각자 자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