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8월26일(주일) - 연중 제21주일
페이지 정보
본문
◎ 연중 제21주일 (다해) [오늘의 복음] 루가 13,22-30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복음산책] 단죄와 구원의 기준 복음사가 루카는 예수님께서 그 일행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상경하고 계심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예수님께서 그 도중에 마치 어느 곳도 빼놓지 않으려는 심상으로 여러 동네와 마을에 직접 들러 가르치셨다고 전한다.(22절) 세상의 심판과 구원이 그만큼 임박했다는 이유다. 루카가 예수님 공생활의 마지막 종착역이 될 예루살렘으로의 상경을 재차 강조하고, 오늘 복음의 첫 부분을 ‘구원받을 사람의 숫자’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23절) 하고 묻는다. 이 질문은 구원받을 사람의 숫자에 관한 것이다. 동시에 질문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사람의 숫자가 적을 것이라는 걱정을 은근히 하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숫자에 대한 답을 주는 대신에 ‘좁은 구원의 문’을 언급하셨다. 이 말씀은 오직 하느님만이 알고 계실 구원받을 사람의 숫자를 묻기보다, 묻고 있는 그 사람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뜻이다. 물론 구원받을 사람의 숫자가 정해지면, 그 숫자에 따라 구원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숫자보다는 좁은 구원의 문을 들어가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24절) 여기서 노력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 온 사람은 알 것이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던 베들레헴에 세워진 성전은 참으로 웅장하고 화려하다. 그러나 이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이 얼마나 좁은지를 말이다. 예수님께서 묻히셨던 돌무덤 성당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들어가는 문도 만만찮게 좁다. 허리를 굽혀 숙이지 않으면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문들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이 구원에 이르는 문이 좁다면 마찬가지로 허리를 굽혀야 한다. 허리를 굽힌다는 것은 자신을 낮춘다는 말이다. 자신을 낮춘다는 것은 오늘 복음에 비추어 볼 때 회개를 의미한다. 그리고 회개는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 회개를 마지막 시간으로 미룬다는 것은 위험천만의 발상(發想)이다. 왜냐하면 구원의 문은 좁을뿐더러 문이 닫히고 나면 다시는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의 문이 한번 닫히면, 거기에는 어떠한 종류의 뇌물이나 억지는 물론, 끈덕진 요구도, 면식(面識)도, 친분(親分)도 통하지 않는다. 하느님이 심판에서 단죄와 구원을 판가름하시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말이다. 구원의 문에 들지 못한 사람은 모두가 ‘불의를 일삼는 자들’이다.(27절) 여기서 심판의 기준이 악행(惡行)과 선행(善行)임을 알 수 있다. 심판의 기준은 예수님과 평소에 식사를 함께 한 것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는 것도,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선(善)을 따라 행동했느냐 않았느냐는 것이다. 줄을 잘 선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선(善)과 정의(正義)를 따라 실천하는 것이 구원받음의 조건이다. 궁극적으로 구원받음은 구원하는 자의 결정에 달려 있지만, 그 결정은 구원을 받고자 노력하는 사람의 의지에 비준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을 적습니까?”(23절) 하고 질문을 던졌던 사람이 바리사이나 율법학자에 속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심증을 굳힐 수가 있다. 그들은 자기
- 이전글2007년9월2일(주일) - 연중 제22주일 07.09.02
- 다음글2007년8월19일(주일) - 연중 제20주일 07.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