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10월7일(주일) - 연중 제27주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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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10월7일(주일) - 연중 제27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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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10-07 조회수 :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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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7일 (주일) - 연중 제27주일 [오늘의 복음] 루카 17,5-10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 5)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복음산책] 명령만 따르는 종에게도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지나간 3번의 주일동안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은 비유’, ‘약은 청지기의 비유’,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복음으로 들었다.(루카 15-16장) 오늘 연중 제27주일에 듣게 되는 복음은 두 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는 믿음의 힘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5-6절)이고, 둘째는 종의 의무에 관한 비유말씀(7-10절)이다. 전혀 별개의 두 개의 내용이 한데 묶여있는 것 같은데 하나씩 살펴보고 연결점을 찾아보자. 그리스의 신화를 접해 본 사람은 ‘판도라의 상자’에 대하여 알 것이다. 하늘과 땅을 지배하는 최고의 신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를 땅으로 보내 처음으로 남자사람과 동물들을 만들게 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사람들에게 이성과 영리함 등 많은 좋은 것들을 선사하고 마지막에 신들만이 사용하는 불을 훔쳐다가 준다. 제우스의 뜻을 거역한 프로메테우스는 카프카스 산꼭대기에 매달려 독수리가 그의 간을 쪼아 먹는 형벌을 받는다. 제우스의 인간에 대한 형벌은 여자사람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헤파이스토스가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아프로디테가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아폴론이 음악을 선사하여 창조된 여자인간이 바로 ‘판도라’이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절대로 열어봐서는 안 된다는 항아리를 하나 줘서 지상의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내는데, 판도라의 호기심과 궁금증은 날로 더해 결국은 항아리를 열고 만다. 순식간에 항아리로부터 시기, 질투, 분노, 미움, 음행, 불목, 싸움, 전쟁, 질병, 죽음 등 온갖 나쁜 것들이 나온다. 깜짝 놀란 판도라가 뚜껑을 다시 닫았을 때 그 속에 남아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희망뿐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온갖 역경과 환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희망은 무엇인가? 희망을 곧 미래의 것에 대한 바램이며, 바램은 믿음을 전제한다. 믿음 없이는 아무 것도 바랄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며”(2코린 5,7), 누구든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로마 10,9)고 가르쳤다. 그보다 먼저 제자들은 어떠했는가? 예수님의 요구에 따라 가진 재산은 물론 가족들과 자기 목숨까지 버릴 각오로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은 내렸지만 그 결단에 수행되어야 마음과 몸이 턱없이 부족했다. 사도들에게 스승의 요구는 한 마디로 감당하기에 벅찼던 것이다. 그래서 사도들은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5절) 하며 자신들의 부족한 믿음을 고백하고, 아울러 ‘믿음을 더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더해 달라는 말은 믿음의 기본은 이미 있다는 말인데, 예수님의 대답은 완전히 뜻밖이다. 예수께서는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고 심겨라’ 하더라도 그대로 될 것이다.”고 하셨다. 이와 비슷한 대목에서 마태오는 겨자씨 한 알의 믿음으로 산을 옮길 수 있다(마태 17,20)고 했고, 마르코는 의심 없는 믿음으로 산을 바다에 통째로 빠뜨릴 수 있다(마르 11,23)고 했다. 무슨 말인가? 결국 사도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도 없다는 말이 아닌가 말이다. 겨자씨는 씨앗 가운데서 가장 작은 씨앗이며, 돌무화과나무는 그 뿌리가 깊어서 거센 바람에도 뿌리 뽑히지 않고 수백 년을 견딜 수 있다는 나무이다. 그렇다고 2,000년의 교회역사 안에서 나무를 뽑아 바다에 심고, 산을 옮기거나 바다에 빠뜨린 믿음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결론은 제자들이 부족하나마 가진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도 안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일까? 이유는 사도들 스스로의 편에서 찾아야 한다. 그들의 믿음은 대가를 바라는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