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10월14일(주일) - 연중 제28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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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28주일 (다해) [오늘의 복음] 루카 17,11-19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복음산책]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에 속한 나 자신. 철저한 분업과 사유재산이 보장되는 현대사회의 종합경제 안에서 상품의 교환과 유통을 원활히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은 단연 ‘돈’이라고 부르는 화폐이다. 돈은 유통경제와 시장경제의 매개적 수단이며, 돈은 그 자체로도 증대(增大)된다. 누구나 상품을 구입한 대가로 그 가격만큼 정확히 돈을 지불해야 한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더라도 ‘의술(醫術)을 구매한 대가’를 돈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인의 삶의 거의 대부분은 돈과 함께 전개된다. 현대인은 돈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에는 명백한 이론이나 정확한 계산으로 되지 않는 일들도 많다. 여기에 속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공짜, 또는 선물이다. 선물은 이론이나 계산의 선을 무너뜨린다. 합리적인 이론이나 계산에는 ‘감사’라는 단어가 그리 걸맞지 않지만, 선물에는 참으로 어울리는 말이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인간관계에서, 나아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꼭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기에 감사는 하나의 덕(德)이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와 전혀 다른 믿음을 가지거나, 하느님을 우리와 다르게 배운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덕을 발견한다. 그들의 덕이 우리들의 것보다 크게 발견되거나 느껴진다면 우리는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라는 백인대장의 고백을 듣고 감탄하신 예수께서 따라오는 군중들에게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다.(루카 7,2-10) 유대인들보다 이방인들이 가진 큰 믿음에 대한 예수의 감탄은 복음의 단지 몇 군데서 발견될 뿐이지만,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나안 여자의 믿음(마태 15,21-28)이나 시리아 페니키아 여자의 믿음(마르 7,24-30)이 그랬고, 루카복음사가 고유의 편집에 속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10,25-37)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치유된 나병환자 열사람 중에서 감사를 드리기 위해 예수께 돌아온 단 한 명의 사마리아 사람(17,11-19)이 그렇다. 오늘 복음은 단연 그 진수(眞髓)를 이룬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고향 나자렛에서 배척을 받자, 구약의 예언자 엘리야가 당시대 이방인이었던 시돈지방 사렙타 마을의 어느 과부만을 구제한 일(1열왕 17,7-16)과, 엘리사가 수많은 나병환자들 중에서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을 깨끗하게 고쳐 주었다(2열왕 5,1-14)는 이야기를 통하여 메시아이신 예수님 자신의 구원활동이 이방인들을 향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셨다. 물론 예수님은 이 이야기로 말미암아 고향 사람들의 화를 불러 일으켜 벼랑 끝에서 객사할 뻔했던 위기를 모면하셨다.(루카 4,16-30) 아무튼 예수님의 이방인에 대한 연민의 정과 그들 믿음에 대한 감탄은 자신의 지상적 사명과 아버지의 보편적 구원의지를 담은 것으로서, 복음선포 가운데 아주 중요한 테마 중의 하나이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노골적으로 배척했고, 초대교회 또한 유대인들을 향한 선교에 다분히 어려움을 안고 있었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위에 열거한 대목들은 이방인 선교에 대한 복음서 저자들의 의도가 내포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보다 위에 하느님과 예수님의 보편적 구원의지가 서 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리스도인이든, 어느 누가 되었든 간에 하느님 앞에 자신의 참된 믿음을 발원(發願)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는 분명 감사할 줄 아는 자이다. 감사할 줄 하는 자가 참된 믿음을 가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처지가 좋건 나쁘건 언제나 감사할 줄 하는 사람이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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