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5월10일(목) - 부활 제5주간 목요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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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5월10일(목) - 부활 제5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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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05-09 조회수 :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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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5,9-11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복음산책] 사랑실천과 계명 준수는 동시사건 포도나무의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고서 포도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제자들의 관계를 정립하시고, 제자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예수께 끝까지 머물러 있으라고 당부하셨다.(15,1-8) 오늘 복음에서도 전체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모티브는 열매를 맺기 위한 포도나무와 가지의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가지인 제자들이 머문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조건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라고 명하시는 것은 아니다. 스승인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을 사랑하셨고, 그 사랑은 아들을 사랑하신 아버지께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따라서 스승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은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그 기초가 된다.(9절) 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신다. 그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조건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먼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을 모델로 제시하신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10절) 예수님께서는 아들로서의 자신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사실을 대단히 기뻐하신다. 제자들이 스승을 따라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문다면 마찬가지로 기쁨이 보장될 것이며(11절), 이 기쁨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제자들에게까지 베풀어주시는 기쁨이다. 계명을 지킴으로써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사실상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난 뒤 새 계명을 선포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3,34) 이렇게 계명과 사랑은 서로 묶여 있다. 구약성경을 따르는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계명과 사랑이 서로 별개의 것이며, 사랑이 계명에 종속되어 계명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신약성경 후기에 사는 우리에게도 구약의 율법은 있고, 이 율법으로부터 물려받은 십계명도 여전히 효력을 발생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계명들 속에서 사랑을 솎아내어 계명 위에 세우셨고 모든 계명의 골자로 사랑을 제시하셨다. 그래서 모든 율법과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인지를 묻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7-40) 이렇게 해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동시에 사랑의 이중계명으로서 모든 계명의 핵심이요 골자다. 이제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곧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은 계명의 전부를 지키는 것과 같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사랑이 추상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사랑의 구체적인 모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13,34)이라는 모범 안에 들어 있다. 여기서의 사랑은 낙관주의(樂觀主義)자들이 생각하는 화사하고 달콤한 로맨스(romance)에 등장하는 낭만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모델은 곧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 앞에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필리 2,8) 세상에 내어놓은 사랑이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당장 제자들의 목숨까지 요구하면서 사랑하라는 것은 아니다. 우선 ‘스승이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의 교과서는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그 책 안에 들어 있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배워 실천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숙제이다. 숙제를 하면서 늘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는 황금률이 아니겠는가? 결국 사랑하는 동시에 계명 준수가 이루어진다. 물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