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7년5월17일(목) - 부활 제6주간 목요일
페이지 정보
본문
◎ 부활 제6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6,16-20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16)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7) 그러자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서로 말하였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또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하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18)그들은 또 “‘조금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수가 없군.”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묻고 싶어 하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하고 내가 말한 것을 가지고 서로 묻고 있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복음산책] 세기의 역전극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의 복음(15,26-16,15)에서 아들을 통하여 아버지께서 보내실 성령 하느님의 정체는 실제적이고 학습적인 차원으로 계시되었다. 성령 하느님의 실제적인 차원은 굳건한 신앙의 행위에 대한 ‘보호자’로 계시된 점이고, 학습적인 차원은 올바른 신앙의 내용에 대한 ‘진리’로서의 계시다. 무엇보다도 성령의 파견은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조건으로 가능한 것이기에(16,7) 다시금 예수님의 ‘떠남’이 언급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떠남’은 ‘잠시 동안’에 해당한다. 그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하게 되었다가 ‘조금 더 있으면’, 즉 얼마 안 가서 다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16절) 오랜만에 제자들이 반응을 보인다. 2차 고별사가 시작되고 꽤나 오랫동안 침묵으로 스승의 말씀을 듣고 있던 그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제자들은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함’, ‘조금 더 있으면 다시 보게 됨’, ‘아버지께 가심’ 등의 말씀에 대한 몰이해를 나타내 보이면서 서로 수군거린다.(17-18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의아심을 직감하시지만 직접적인 해답을 주시기보다는 이런 일들로 말미암아 제자들은 슬퍼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임을, 그러나 제자들의 근심이 곧 기쁨으로 전환될 것임을 예고하신다.(19-20절) 제자들의 머릿속이 꽤나 혼란스럽다. 보지 못한다? 보게 된다? 못 본다? 본다? 이 무슨 뚱딴지같은 말씀인가? 보면 보는 것이고, 못 보면 못 보는 것이지, 보지 못하겠지만 얼마 안 가서 다시 보게 된다는 말이 과연 무슨 뜻인가? 제자들의 머릿속에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9,39)는 말씀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사실 예수님은 못 보는 사람을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을 못 보게 하려고 오신 분이 아니신가. 성경을 앞에 둔 우리는 이 대목이 예수님의 죽음, 부활과 발현, 승천과 성령강림,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림(再臨)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당연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들이다. 우리 인간은 만나서 헤어질 때 “그럼, 잘 가. 다시 보자”, “또 보자”고 말한다. 꼭 언제 다시 볼 것을 약속하지 않더라도 막연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살아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든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별이 죽음이라면 그런 말은 더 이상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못 본다.”, 그러나 그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실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더 있으면 “다시 보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 죽음과 부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 있어서 죽음과 부활은 하나의 사건이며, 이 사건이 곧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다. 예수님의 고통에서 기쁨이 솟아나고 죽음에서 생명이 태어난다 하더라도 그 생명과 기쁨이 죽음과 고통을 대체할 수는 없다. 죽음 없이 생명이 있을 수 없고, 고통 없이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과 고통은 참혹하고 쓰라리고 아픈 것이다. 제자들 또한 스승의 고통과 죽음의 시간에 죽어가는 스승과 함께 어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이의 시간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두 번 다시는 없을 가장 참담하고 비통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죽였다.”고 세상은 말한다. “우리가 예수를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존재로 제거했다.”고 세상은 확신한다. 세상은 이렇게 자신의 권력으로 예수를 제거했음을 오만과 자만으로 기뻐할
- 이전글2007년5월18일(금) - 부활 제6주간 금요일 07.05.17
- 다음글2007년5월16일(수) - 부활 제6주간 수요일 07.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