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5월1일(화) - 부활 제4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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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4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0,22-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22)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 23)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는데, 24) 유다인들이 그분을 둘러싸고 말하였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복음산책] 확증과 믿음은 별개의 것이다. 오늘 복음을 포함한 요한복음 10장 22절-42절은 예수님의 신성(神聖)에 관하여 유다인과 펼치는 논쟁을 보도하고 있다. 이 논쟁보도는 앞서간 ‘목자와 문과 양 우리’와 ‘착한 목자와 양’의 비유말씀(10,1-21)과 비교해 볼 때, 장소는 같은 예루살렘을 무대로 삼고 있지만 시기적으로는 바로 연결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복음의 도입부인 22절이 밝히고 있듯이 논쟁의 시점은 성전 봉헌절 축제기간이며 계절은 겨울철이다. 반면에 비유말씀은 요한복음 7장 10절이 보도하는 초막절 축제기간 중에 행해진 말씀이다. 따라서 요한복음 7장 10절-10장 21절의 보도는 시기적으로 봉헌절보다 2달 정도 빠른 초막절에 속한다. 성전 봉헌절은 기원전 165년 기슬레우 달(12월)에 유다 마카베오가 시리아의 왕 안티오코스 4세(기원전 175-164년)에 의해 더럽혀진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하여 성전을 정화하고 번제(燔祭) 제단을 세워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축제이다. 유다인들은 이 축제를 일주일간 계속 지냈으며, 초막절과 비슷한 전례의식들을 거행하였다.(2마카 1,9; 10,6 참조) 그러나 전체 구조상의 논리성은 상당히 면밀하여 착한 목자를 주제로 한 그리스도론은 일관성 있게 추구되고 있다. 시간은 흘러 예루살렘 성전 봉헌절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 구내에 있는 솔로몬 행각(주랑)을 거닐고 계셨다. 계절적으로 시간만 흐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혀주기를 재촉한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24절)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25절) 하고 대답을 주신다. 그렇다.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누누이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고, 아버지께서 자기를 파견하셨으며, 종말론적 계시자임을 언급하셨을 뿐 아니라(5,17; 5,38; 6,36; 8,54 등 참조), 이 언명(言明)을 입증할 수 있는 수많은 업적을 행하셨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입으로 직접 메시아이심을 밝힌 적은 요한복음에 딱 한 번 나온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한 고을 시카르에서 한 여인이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는 말에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고 대답하신 부분이다.(요한 4,25-26) 유다인들은 아직 메시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불신(不信)하는 이유를 대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목자와 양’의 비유말씀을 재차 언급하신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26-27절) 한 목자에게 속한 양들이 그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과 양들이 자기 주인이 아닌 다른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양들이 주인의 말을 따라 행동할 것은 빤한 일이다. 달리 말해서 양들이 주인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듣다’와 ‘믿다’의 상호관계가 부각된다. 즉 믿음은 들음의 결과이며, 들음은 믿음의 원인이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자세가 되어있지 않았고, 그 결과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얻을 수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이를 받아들이려하기보다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증을 먼저 손에 쥐려 했던 것이다.(24절) 확증을 손에 쥐고 그 다음에 믿겠다는 심산(心算)이다. 확실히 말하지만 확증과 믿음은 별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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