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7년5월7일(월) - 부활 제5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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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4,21-26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22) 이스카리옷이 아닌 다른 유다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하자,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복음산책] 성령의 약속과 성령 하느님의 정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유독 요한복음사가만이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행하신 긴 고별사를 보도한다.(13-17장) 그러나 성서학자들은 13-14장이 요한복음의 원초적인 고별사에 속하고 15-17장은 추가로 편집된 것으로 주장한다. 요한복음 21장이 추가로 편집된 것과 같이 15-17장도 요한복음 공동체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후에 첨가되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14장의 마지막 구절에 해당하는 “일어나 가자.”(14,31b)라는 문구가 제공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만찬의 자리를 파하고 제자들과 함께 코앞에 닥쳐온 수난의 시간을 맞이하러 가자는 권유를 하시는데, 15장 서두가 ‘포도나무와 농부’에 관한 가르침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5-17장은 13-14장에 대한 후대에 첨가된 부연설명으로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누신 후 행하신 기나긴 고별사(13-17장)의 원초적인 부분에 해당된다. 요한복음 13장은 최후의 만찬 후 제자들의 발을 씻김(1-11절), 발을 씻겨줌의 의미(12-20절), 유다의 배반예고(21-30절), 새 계명 선포(31-35), 베드로의 장담과 배반예고(36-38절 끝) 등을 보도하고 있다. 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길과 진리와 생명이심을 선포하신 내용과 아버지와 아들의 일치(1-14절), 성령의 약속(15-26절),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27-31절 끝)에 관한 가르침으로 구성된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별사를 요한복음 13-14장으로 한정할 때, 고별사 전체를 주도하는 가르침은 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 ② 아들의 마지막 자기계시와 정체, ③ 성령의 약속과 오시는 성령의 정체를 공개(公開)하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이 세 가지 주제는 순서대로 다루어지거나 독자적인 단락 안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고별사 전체를 오가는 흐름을 주도한다. 물론 성령의 약속과 오시는 성령의 정체성에 관한 보도는 14,15-26에 한정되는데, 여기에서도 사랑의 계명은 함께 언급된다. 이 단락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성령의 약속과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다. 우리의 시선을 오늘 복음에 집중시켜보자. 우선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테마를 재삼 언급하시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은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나아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통하여 아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21절) 그런데 11제자 중에서 유다 타대오가 예수님께서 세상에는 자신을 나타내 보이지 않고 제자들에게만 한정하여 나타내 보이려 하는 의도에 대하여 질문을 던진다.(22절) 이 질문은 사실상 불만과 의구심을 담은 질문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참에 왜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으로 군림할 수 없는지에 대한 불만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질문의 의도를 비켜간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세상의 메시아로 이 땅에 오셨으며, 또 메시아로 자신을 계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이를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메시아적 자기계시는 ‘사랑함으로써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 즉 적어도 제자들에게 한정되는 셈이다.(23-24절) 제자들은 자신들이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된 말씀을 들었다. 또 듣고 응답하였으며, 응답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공동체’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도 누구든지 예수님의 사랑에 머물고 그 사랑을 지키는 사람은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 거처를 가질 뿐만 아니라, 그 사람 스스로가 하느님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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