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5월8일(화) - 부활 제5주간 화요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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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5월8일(화) - 부활 제5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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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05-08 조회수 :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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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5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4,27-31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30) 나는 너희와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겠다.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 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일어나 가자.”]◆ [복음산책]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평화의 원천 주지하다시피 요한복음이 전하는 최후만찬 석상에서의 원초적인 고별사는 13-14장으로 끝난다. 오늘 복음이 바로 고별사의 마지막 부분이다. 오늘 미사전례의 복음에서 의도적으로 빠져 있는 14장의 마지막 구절, “일어나 가자.”(31b절)라는 마지막 말씀으로 예수님의 고별사가 마감된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고별사를 마치시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최후의 몇 시간을 향하여, 즉 유다의 배반과 수난과 죽음을 향하여 힘차게 걸어가신다. 제자들도 이 시간을 함께 지내도록 초대받는다. 그러나 나중에 첨가된 15-17장은 후기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고별사를 길게 이어가고 있다. 어제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언급된 ‘보호자이시며 진리의 성령에 관한 약속말씀’에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 연결된다. 예수님께서 주시려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27절)고 하지만, 사실 세상은 자신이 줄 수 있는 평화를 가지고 있지 않다. 세상은 오히려 불안과 걱정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세상은 평화를 원하고 또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 평화(平和)란 평온하고 화목한 것으로 전쟁(戰爭)이나 분쟁(紛爭)의 상대적 개념이다. 평화의 내용과 의미는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여 왔다. 동양 문화권에서의 정적이고 내향적이며 비정치적인 데 비해 서양 문화권에서는 동적이고 외향적이며 정치적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근대에 들어 세계평화는 앞의 전자(前者)에 해당되는 듯 하는 반전주의나 이상주의의 한 기둥과, 후자(後者)에 해당되는 듯 하는 국제주의나 현실주의의 다른 기둥으로 도모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철저한 반전주의의 입장을 취하여 왔다. 오늘날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은 UN의 정신이 주도하고 있으나, 그 입장은 서양 문화권을 대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로마제국주의 시대의 “팍스 로마나”(Pax Romana)와 중세기 십자군원정과 흡사한 것으로서 제국 내에서는 통일과 질서를 구현하면서도 제국 밖으로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전쟁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만약 세상이 자신의 힘으로 평화를 준다면, 그것은 하늘이 주는 것이며, 하늘이 주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한시적인 만족에 불과하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제자들도 불안과 걱정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다. 세상의 온갖 악과 고통과 두려움, 믿어지지 않는 세상 사건에 대한 하느님의 기나긴 침묵은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공동체에 머무는 자는 세상의 모든 걱정과 불안을 극복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떠나가심’은 ‘다시 오심’을 위한 것이다. 신약성서 공동체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 곧바로 이어질 사건이나, 어떤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질 재림(再臨)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다시 오시기로 한 예수님이 기대한 시간 안에 오시지 않게 되자 세상의 마지막 시간에로 생각을 옮기게 된다. 이를 일컬어 초대교회가 경험한 ‘재림지체(再臨遲滯) 현상’이라고 한다. 상황이 어찌되었든 예수님의 ‘다시 오심’의 약속은 불안과 걱정을 가득 찬 세상을 극복하는 모든 희망의 근거로 충분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온갖 불신(不信)의 요소를 제공하더라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말 것을 당부하신다.(29절) 이제 마지막 시간이 목전에 다가왔고 세상의 권력자가 가까이 오고 있다. 세상의 권력자란 우선 사탄의 도구로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13,27)와 예수님을 체포하러 오는 군대(18,3)를 구체적으로 의미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볼 때 이 권력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그 자체, 그래서 생명이 없고 죽음만 가지고 있는 세상의 권력을 가리킨다. 따라서 세상의 권력이 잠시나마 예수님보다 우세(優勢)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