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4월29일(주일) - 부활 제4주일 (다해) >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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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4월29일(주일) - 부활 제4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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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04-30 조회수 :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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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4주일 (다해) ▣ 성소주일 부활 제4주일은 성소(聖召)주일이다.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심각한 사제부족으로 목자 없는 양떼가 너무 많아진 사실을 심려한 나머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매년 부활 제4주일을 성소(聖召)의 날로 정하였다. 이 날은 세계의 온 교회가 한 마음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뜻에 따라 ‘사람 낚는 어부’(마태 4,19)로서의 사제성소(司祭聖召)에 응답하도록, 그리고 청빈과 순명과 정결의 복음삼덕에 자신을 봉헌하는 수도성소(修道聖召)에 응답하도록 열심히 기도하는 날이다. 나아가 그리스도신자 모두가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결혼(結婚)성소, 평신도(平信徒)성소 등의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할 것을 촉구한다. [오늘의 복음] 요한 10,27-30 <나는 내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복음산책] 성소주일을 위한 메시지 요한복음이 제공하는 그리스도론은 다른 어떤 복음서의 그리스도론보다 단연 우월하고 그 내용도 충실하다. 그것은 요한복음 전체(1-21장)가 장고(長考)의 성찰(省察)과 명상(冥想)에 의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왔으며, 왜 예수님이 구세주요, 그리스도이신지를 밝혀주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요한 20,31)이 복음서의 목적이다. 그렇다고 복음서가 자체의 성찰과 명상으로 그리스도론에 이른 것은 아니다. 모두가 역사적 예수님의 끊임없는 자기계시(自己啓示)와 이 계시를 이해하도록 도와준 협조자이시며 진리이신 성령 하느님의 이끄심 덕분이다. 요한복음이 탁월한 그리스도론을 펼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나는 ~이다.”는 도식으로 예수님의 자기계시적 진리를 잘 파악한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신 예수님께서는 동시에 하느님이신 당신을 인간의 이성이 파악할 수 있는 영역 안으로 표현해 주셨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그런 표현을 예로 들자면, 바로 “나는 생명의 빵이다.”(6,48),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문이다.”(10,9), “나는 착한 목자이다.”(10,14),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10,30),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15,5) 등의 표현들이다. 이런 표현들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사실상 단순한 표현 이상의 것들이다. 이는 곧 예수님의 자기계시인 것이다. 부활 제4주일이자 성소주일에 들려주는 오늘 복음에도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30절)는 예수님의 자기계시적 표현이 등장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함께 일하며(5,17), 하느님과 일치하고(5,30; 8,16), 하느님의 뜻과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6,38; 8,26; 10,18)는 내용을 총체적으로 함축하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곧 하느님이시며, 아들로서 아버지와의 철저한 일치의 원리 속에서 모든 것을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0장의 자기계시적 진리에 속하는 오늘 복음(10,27-30)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히 그 첫 구절부터 읽어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나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목자와 양의 비유’의 비유를 통하여 자신을 착한 목자와 양이 드나드는 문으로 계시하셨다. 뿐만 아니라 문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양 우리에 들어오는 모든 양들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으실 것을 약속하셨다.(10,1-18) 이 때문에 유다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고, 이 논란은 예루살렘 성전 구내에서 벌어진 예수님과 유다인들의 사이의 논쟁으로 이어진다. 유다인들은 조급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10,24) 하면서 대답을 요구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미 주어졌었다. 그러나 유다인들이 그 대답을 외면한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의 양 우리에 속한 양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양 우리에 속하지 않은 양들은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분을 따라가는 양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다. 이 생명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