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3월25일(주일) - 사순 제5주일 (다해) >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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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3월25일(주일) - 사순 제5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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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03-28 조회수 : 2,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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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5주일 (다해) [오늘의 복음] 요한 8,1-11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복음산책] 두 갈래의 길 : 살리는 길과 죽이는 길 요한복음 7장부터 10장에는 애당초 계시된 두 갈래의 길이 뚜렷이 보인다. 하나는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수님께서 추진하시는 생명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적대자들이 꾸미고 있는 죽음의 길이다. 이 두 길은 예수님과 그의 적대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격렬한 논쟁으로 서로 고조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이 두 길은 나란히 펼쳐진 평행의 길이 아니라 서로 교차되는, 또 교차될 수밖에 없는 길로써 하나가 다른 하나에 의해 막다른 길이 되어야 하는 길이다. 생명의 길은 빛이요, 죽음의 길은 어둠이다. 그런데 생명의 길이 죽음의 길과의 교차점에서 제지당하고 거부당하고 있다. 어둠에 덮여있는 이 세상에 한 가닥의 빛이라도 더 주시려 바삐 움직이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 복음말씀 서두에 그대로 쓰며있다. 초막절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신(7,10) 예수께서는 축제기간 7일 중에 반(半)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계셨으며(7,11), 나머지 반은 거의 매일 성전에서 가르치시는(7,14) 바쁜 일정을 보내신 것으로 추정된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군중을 가르치시는 중에 ‘큰소리’(7,28)와 ‘외침’(7,37)을 곁들이는 큰 열성을 보이셨다. 생명의 길을 위한 예수의 가르침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한 일은 죽음의 길에 합세했던 자들 중에 몇몇이 예수께 호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를 잡으러 갔다가 오히려 그분의 가르침에 매료되어 빈손으로 돌아왔던 성전 경비병들(7,45-46)도 그렇고 니코데모(7,51)도 그렇다. 명절의 마지막 날(7,37)을 올리브 산에서 묵으신 예수께서 다음날 이른 아침에 또다시 성전에 나타나 가르치신 것(2절)으로 오늘 복음은 시작된다. 오늘 복음은 언제 들어도 아름다운 복음으로 ‘간음(姦淫)한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놀라운 판결’에 관한 이야기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길에 들어선 한 여인이 예수님 때문에 생명의 길을 갈 수 있게 된 이야기다. 성서학자들은 오늘 복음(8,1-11)을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인다. 이 대목은 원래 요한복음의 수사본(手寫本)에 없던 대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구전(口傳)으로 전해오다가 빨라도 5세기경 그 내용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지금의 위치에 삽입된 것이라는 주장이 압도적이다. 학자들은 오늘 복음을 앞․뒤의 문맥과 비교하여 볼 때 어느 쪽으로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오히려 이것이 7장부터 10장 전체에 고조되는 논쟁의 분위기를 깨뜨리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또 다른 이유로는 8장 12절부터의 말씀이 성전 입구 헌금궤가 있는 곳(8,20)에서 언급된 데 비하여 오늘 복음은 땅바닥이 있는 성전 마당에서 있었던 사건으로서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든다. 어울리지 않는 이유야 어찌 되었든 필자가 보기엔 이 대목을 여기에 삽입한 이유를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 대목을 여기에 첨가한 의도는 앞에서 언급한 두 갈래 서로 다른 길에 있다. 즉, 사람을 살리는 길과 죽이는 길에 있다는 말이다. 간음(姦淫) 행위의 주인공인 여인이 현장에서 발각되었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발뺌의 여지가 추호도 없다. 여인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