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3월27일(화) - 사순 제5주간 화요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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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3월27일(화) - 사순 제5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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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03-28 조회수 :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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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8,21-30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22) 그러자 유다인들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24)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25)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27)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복음산책] 오신 곳을 모르면 가시는 곳도 알 수 없다. 요한복음 1장은 프롤로그(서문)와 세례자 요한의 증언, 요한의 퇴출과 예수의 등장을 다루고 있다. 2장부터는 예수의 본격적인 공생활이 시작되어 12장에 이르기까지 꼬박 3년간의 자기계시적 가르침과 활동을 들려준다. 13장부터 17장까지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제자들과의 만찬석상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고별사를, 18장에서 19장은 체포, 심문, 사형선고, 수난, 죽음과 무덤에 묻힘을, 20장에서 마지막 21장은 예수부활, 발현사화, 그리고 에필로그(맺음말)로 요한복음은 끝난다. 요한복음이 그리스도교 신학 전반에 걸쳐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에서 하느님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을 정립할 수 있도록 제공된 정보들은 참으로 심오하고 귀중하고 값진 것이다. 특히 요한복음 1장은 ‘전실존적(前實存的) 그리스도론’을 2장부터 12장은 ‘하향(下向) 그리스도론’과 그리스도 신성(神性)의 하느님 본성(本姓)과의 일치성을, 13장부터 17장은 성령론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값지고 귀중하고 심오한 진리가 당장 그 자리에서 진가를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 하느님의 진리는 유다교의 지식층으로부터 많은 반대와 오해를 받았고, 갈등과 논쟁을 초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진리선포와 자기계시는 계속되어야 했다. 그것이 곧 하느님의 일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었다.(29절) 요한복음 7장에서 8장은 어떤 특별한 육체적 활동 없이 예수님의 순순한 자기계시적 가르침을 피력하고 있다. 물론 후대에 삽입된 요한 8,1-11(간음한 여인에 대한 유다인의 고발과 예수님의 용서의 이야기)을 빼고 봐도 좋고, 넣고 봐도 무방하다. 7장이 예수의 메시아적 기원에 관한 논쟁과 증언을 다루고 있다면, 8장에서는 예수의 정체성에 관한 자기증언으로 예수님의 자기계시가 고조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7장은 나자렛 예수의 인성(人性)에 대한 논란을 통하여 메시아적 신성(神性)에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는 반면, 8장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에 중점을 둔다. 예수님은 누구인가? 예수님은 정말 그리스도인가? 질문하는 편과 대답하는 편의 간격은 갈수록 멀어지고 더 이상 오갈 수 없는 절벽으로 벌어진다. 이 점에 있어서는 법대로 처리하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냉정함과,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과 자비로 용서를 베푸는 예수님의 입장(8,1-11)이 한 몫을 한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21절)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23절) 이러한 언명은 예수님과 유다인 지도자들 사이에 절벽만 있을 뿐 더 이상 이해 가능한 지평이나 공감대가 없음을 뜻한다. 예수님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모르는 유다인들이 예수님이 어디로 가는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오신 곳으로 다시 가실 것이다. 이어 “당신이 누구요?”라는 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더욱 확실한 대답을 주신다. 물론 질문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