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3월30일(금) - 사순 제5주간 금요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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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3월30일(금) - 사순 제5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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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03-30 조회수 : 2,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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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5주간 금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0,31-42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셨다.> 31) 그러자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33)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36)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39)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40)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41)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42)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복음산책] 손에 돌을 쥔 채로 가르침을 받다. 어제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보았듯이 돌을 집어 들고 예수님을 치려고 했던 유다인들이 또 다시 돌을 집어 들었다. 물론 같은 자리에서 집어든 돌을 놓았다가 다시 집어든 것은 아니다. 요한복음을 통틀어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한 대목은 모두 두 번이었다.(8,59; 10,31) 어제 복음과 오늘 복음 사이에는 요한복음의 여섯 번째 표징사화에 해당하는 예수님의 ‘태생 소경의 치유’와 이에 대한 ‘바리사이들의 생트집 사건’(9,1-41)이 있었고, 그리고 이 사건과 직접 연결된 ‘착한 목자와 양의 비유’(10,21)를 통한 가르침이 자리하고 있다. 유다인들이 돌로 예수님을 치려했던 첫 번째 이유는 초막절 축제 마감에 즈음하여 성전에서 행한 가르침과 논쟁 때문이었다.(8장) 이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神性)을 밝히신 이유 때문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예수님 자신을 유다인들이 믿고 있던 하느님께서 파견한 메시아인 동시에 아들로 선포하신 것, 아버지처럼 영원한 생명을 주관하신다는 것, 그리고 유다인들이 조상들 중에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던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에 먼저 있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오늘 복음의 바로 전 구절로서 ‘착한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한 가르침에 잇따른 논쟁에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10,30)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던 두 번의 이유는 결국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탈출 20,7)는 십계명의 제2계명에 근거한다. 따라서 주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 모욕한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온 공동체가 그에게 돌을 던져야 한다. 이방인이든 본토인이든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면 사형을 받아야 한다.”(레위 24,16)는 시행세칙에 저촉되는 셈이다. 우상숭배를 종용하거나 다른 신을 섬기자고 선동하는 예언자나 환몽가들 또한 “돌을 던져 그를 죽여야 한다. 그는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에게서 너희를 떼어 내려고 하였기 때문이다.”(신명 13,11)는 세칙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세칙들이 예수님께는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스스로 당신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죄가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 스스로가 자신에 대하여 지나칠 만큼 자상하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 무슨 죄가 되는가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31절)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제 복음에서와 같이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고비를 넘기신다. 오히려 죽을 수도 있는 빌미를 제공하면서까지 당신의 신적(神的) 본성(本性)을 계시해 주신다. 당신과 아버지가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다인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