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4월2일(월) - 성주간 월요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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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4월2일(월) - 성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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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04-02 조회수 :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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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2,1-11 <내 장례 날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를 그냥 놔 두어라.>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복음산책] 향유에 담긴 사랑 어제 주님수난성지주일에는 환호와 열광, 고통과 죽음의 극단적인 두 가지 서로 다른 분위기가 큰 대조를 이루었다. 제1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행렬에서는 군중과 제자들의 환호와 기쁨과 믿음이 고조되었고, 제2부 미사에서는 예수님 스스로가 십자가를 지고 겪어야 할 불신과 배신, 고통과 죽음의 현실이 시종(始終) 무겁게 깔려있었다. 후자(後者)는 특히 긴 수난복음만큼이나 긴 암흑의 터널을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오늘 성주간 월요일부터는 암흑의 긴 터널을 하나씩 토막 내어 부둥켜안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며 내 것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제1부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12장은 베타니아와 예루살렘을 무대로 펼쳐지는 예수님 공생활의 마지막 일들을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요한복음 12장은 죽었던 라자로를 소생시켜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보이는 베타니아 사람들의 영접 만찬회와 라자로의 동생으로 봐도 무방할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바르는 사건(1-11절), 예루살렘 입성(12-19절), 이방인 그리스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자기계시(20-26절), 며칠 안에 벌어질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고(27-36절), 예수님의 마지막 공적 말씀에 대한 유다인들의 최종적 불신과 이에 대한 심판예고(37-50절)를 그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베타니아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바르고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린 사건과 비슷한 내용을 마태오와 마르코복음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후에 있었던 사건(마태 26,6-13; 마르 14,3-9)으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 요한복음은 입성 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보도하고 있다. 물론 마태오와 마르코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어떤 여자’가 와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한다. 향유를 머리에 부었건 발에 부었건 여인(마리아)의 행위는 예수님의 ‘장례 날’을 위하여 한 일이다. 요한은 이 사건을 과월절 엿새 전에 일어난 일로 보도함으로써 이 날이 금요일임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과월절 시작 일을 포함한 정확히 이레 후 금요일엔 예수님의 장례식이 치러질 것이다. 장례식을 일주일 앞두고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생애 마지막 만찬을 영접 받았으며, 값비싼 향유를 자신의 주검을 위한 수의(壽衣)의 표징으로 받으셨다. 예수님과 함께 라자로, 마르타, 그리고 손님들 모두가 기뻐하였으며, 마리아는 예수님께 특별한 사랑(향유)을 보였고, 그 사랑의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 찼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유다 이스카리옷만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예수님 발에 쏟아 부은 매우 값진 한 근의 순 나르드 향유 때문이었다. 유다는 머릿속으로 주판을 놓았다. 순 나르드 향유 한 근을 돈으로 계산하면 3백 데나리온, 이는 사람 5,000명을 빵으로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값어치의 놀라운 금액이다.(요한 6,7-9 참조) 유다의 눈에는 그것이 낭비로 보였다. 마리아의 행동은 분명 낭비이기도 하다. 그녀는 매우 값진 한 근의 순 나르드 향유를 오직 예수님의 발을 위하여 쏟아 부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 마리아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