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3월19일(월) - 성 요셉 대축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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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3월19일(월) - 성 요셉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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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03-20 조회수 :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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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9일 - 성 요셉 대축일 ▣ 한국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오늘의 복음] 마태 1,16.18-21.24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대로 하였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복음산책] 요셉 성인에게 만들어 준 명함(名銜) 한창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는 교회가 오늘 하루만큼은 사순시기를 중단하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요, 예수님의 양아버지인 요셉 성인을 크게 경축한다. 요셉 성인에 관한 성서상의 기록은 복음서의 전사(前史)에 속하는 마태오복음 1-2장, 루카복음 1-2장에서 예수의 탄생과 더불어 보도된 내용이 전부이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후손(마태 1,16)이었으나, 다윗의 고을인 유다지방 베들레헴에서 살지 않고 갈릴래아지방 나자렛에서 살았던 것(루가 2,4)으로 추정된다. 이곳 나자렛에서 목수 직업을 가졌던 요셉은 ‘의로운 사람’, 즉 법대로 사는 사람(마태 1,19)으로 이미 세간(世間)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하였으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가진 그녀와 파혼하지 말라는 천사의 명을 받들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호구조사령 때문에 다윗의 고을 베들레헴에 왔고, 여기서 예수님을 낳게 된다.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목동들과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았고, 헤로데 대왕의 무죄한 영아학살을 피하기 위하여 가족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였다. 헤로데 대왕이 죽은 후에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나자렛으로 와서 살았다. 요셉은 아기 예수님에게 할례를 베풀었고,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였다. 예수님이 12세였을 때,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잃어버렸다가, 학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던 아들을 찾기도 하였다. 여기까지가 전사(前史)가 보도하는 내용이다. 그 후 요셉이 예수님의 아버지이고 목수였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공생활 중 고향방문 때 그곳 사람들의 입으로 증언된다.(마태 13,55; 마르 6,3; 루카 4,22) 기원후 2세기경에 예수님의 형제로 추정되는 야고보가 편집한, 그러나 위경(僞經)에 해당하는 <야고보 복음서>에는 요셉과 마리아, 안나와 요아킴, 그리고 예수님의 소위 ‘잃어버린 시절’(12살~30살)에 관한 흥미로운 기사가 많다. 야고보복음서에 따르면 요셉이 마리아와 약혼할 때 이미 80세의 고령이었고 이미 결혼한 경험이 있어 슬하에 야고보, 유다, 시몬, 미리암 등의 자식들을 둔 것으로(마태 13,55) 전해진다. 야고보복음서의 이러한 내용은 초기 교회가 직면한 일련의 신학적 문제들에 대한 성서적 근거를 들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당시 중대한 신학적 문제들로는 성모 마리아의 동정성과 천주의 모친성, 성령으로 말미암은 예수잉태, 예수의 신성(神性)등을 손꼽을 수 있다. 야고보복음은 어디까지나 위경(僞經)에 속하기 때문에 그 내용의 역사성과 진실성은 아무도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정경(正經)을 이해하는데 다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셉!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원래 그는 가장자리에 서 있고, 그림자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침묵 가운데서도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었고, 하느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내리는 지시를 군말 없이 따랐으며, 보여주는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이것이 요셉의 법칙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에게 입을 주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위에서 보았듯이 요셉에 관한 성서적 근거는 마태오와 루카복음이 전하고 있는 예수의 탄생예고부터 12살까지로 한정된다. 그러나 그 어느 부분에도 요셉 스스로의 말은 찾아볼 수 없다. 요셉은 그저 침묵으로 등장하며, 그저 마음먹는 것뿐이다. 성서저자가 말할 기회를 주지 않은 그 의미가 무엇일까? 마태오와 루카의 의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성서상 말하지 못하는 요셉의 답답함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말이 없는 자의 마음은 더 크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다. 그렇다. 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