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3월20일(화) - 사순 제4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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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5,1-16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 1) 그 뒤에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3)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일부 수사본에는 -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4)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하였는데, 물이 출렁거린 다음 맨 먼저 못에 내려가는 이는 무슨 질병에 걸렸더라도 건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5)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6)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7)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9)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10)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1)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13)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5)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16)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복음산책] 안식일도 예수님의 사랑을 막을 수 없다. 어제 복음은 예수님께서 한 왕실 관리의 아들을 원격(遠隔) 치유하신 기적 이야기였다.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의 7개 표징사화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벳자타 못가의 병자를 치유한 기적 이야기이다. 무대는 갈릴래아 지방 카나에서 예루살렘으로 바뀌었다.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예수님께서 오순절 축제를 지내시기 위하여 상경하신 것으로 추정된다.(1절) 그것은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를 맞아 상경하셨다가 다시 내려가셨기 때문이다.(요한 2,13.23; 3,22; 4,43 참조) 모든 유다인들은 13살이 되면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축제를 지낼 의무가 있었다. 그것은 유다인의 3대 축제일로서 파스카라 불리는 과월절(뻬샤흐; 3월~4월), 오순절(샤부옷; 5월~6월), 그리고 초막절/추수감사절(수우콧; 9월~10월)이었다. 요한복음은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과월절을 해방절이라 칭하고 있다.(13,1) 유다인들의 달력은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우스 달력과는 판이하다. 유다인의 달력은 우리 달력의 3월 또는, 4월에 해당하는 ‘니산’달로 시작한다. 과월절 축제는 ‘니산’달, 즉 정월 14일째 날에 해당된다.(민수 28,16) 오늘 복음이 말하는 오순절 축제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내린 것을 기념하는 축제로서 과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을 말한다. 참고로 세 번째 축제인 초막절은 장막절이라고도 하는데, 이스라엘 성조들의 유목생활을 기억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후 가나안으로 향했던 40년간의 방랑생활을 기념하는 축제이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로는 추수감사절과 합쳐 지냈던 축제이기도 하다. 오늘 복음에서 38년간 중병에 시달린 병자가 치유를 받는 이야기는 분명 40년간의 방랑생활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38년이나 중병으로 앓고 있던 병자에게 사실상 희망이란 없었다. 한 가닥 희망은 벳자타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 맨 먼저 물에 들어가는 것이었다.(4절) 그러나 그것도 그의 희망이 될 수 없었다. 그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병자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건강해지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그는 예수님을 물이 움직일 때 자기를 물에 넣어줄 수 있는 사람 중에 하나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이상의 인물이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벳자타 연못이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그분은 스스로 육체와 죄의 치유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 홀로 구원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며, 그분의 이름 외에 어떤 이름도 구원을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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