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3월21일(수) - 사순 제4주간 수요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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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3월21일(수) - 사순 제4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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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03-20 조회수 :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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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4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5,17-30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17)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이 때문에 유다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기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당신 아버지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께서 하시는 것을 아들도 그대로 할 따름이다. 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는 것처럼,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이들을 다시 살린다. 22)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기셨다. 23)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이는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이들이 하느님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또 그렇게 들은 이들이 살아날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26) 아버지께서 당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가지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27) 아버지께서는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심판을 하는 권한도 주셨다. 28) 이 말에 놀라지 마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듣는 때가 온다. 29)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이다. 30)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할 따름이다. 그래서 내 심판은 올바르다. 내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복음산책] 누가 이토록 아버지의 뜻을 받드는가? 오늘 복음의 첫머리에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5,17)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선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어제 복음에서 안식일에 38년 동안 앓던 병자를 치유하여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게 하심으로써 안식일 금지규정을 어기신 것에 대한 예수님의 해명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버지는 유다인들이 유일신으로 섬기는 하느님 야훼이며, 궁극적으로는 예수의 아버지이시다. 안식일에 관한 율법을 내리신 아버지께서 안식일에도 일하시므로 아들인 예수께서도 일하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들도 자동적으로 안식일 율법 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근거를 아버지와의 철저한 일치성에 두고 있다. 즉 예수님은 자신을 아들로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밝히고, 일치성으로 하느님과 같다는 주장을 하시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변호와 자세한 설명이 자기계시적 가르침으로 이어진다.(5,19-47) 우리는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안다. 공관복음서가 예수의 사건들을 연대기적으로 보도하는 방식을 통하여 지상 예수에서 메시아 그리스도로 향하는 신학(상향 그리스도론)을 전개하고 있는 반면, 요한복음은 전승된 사료들을 심층적으로 분석, 명상, 해석하여 하느님의 아들에서 나자렛 인간 예수로 향하는 신학(하향 그리스도론)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상향 그리스도론이나 하향 그리스도론이나 출발점만 다르고 실상은 같은 것이다. 나아가 요한복음은 예수가 육화(肉化)된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이 말씀은 이미 세상창조 이전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는 선재(先在) 그리스도론을 펴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요한복음서는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서 둘도 없는 중요한 자료이다. 여기서 신학은 그리스도론, 삼위일체론(구원경륜적 삼위일체론과 내재적 삼위일체론), 성령론, 교회론, 성사론 등 다양한 분야의 신비를 조명하게 된다. 물론 더 중요한 자료는 두말할 필요 없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세상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그만큼 하느님에 대하여 알고 있으며, 복음사가는 그만큼을 성령의 감도에 의하여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 스스로가 하느님과 같다는 발언은 유대인들에게 천지개벽할 일이었고, 이는 곧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예수님를 신앙하는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언명이지만 “주 우리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신명 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