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3월5일(월) - 사순 제2주간 월요일 > 복음 묵상

백삼위 한인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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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 2007년3월5일(월) - 사순 제2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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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 : 2007-03-06 조회수 : 2,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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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루카 6,36-38 <남을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복음산책] 황금률을 능가하는 하느님의 자비로움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이 전하는 황금률이다.(38절) 이는 마태오복음이 산상설교(5장-7장)의 결론에서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으로 제시하는 황금률(7,12)과 같은 것이다. 마태오복음의 산상설교가 루카복음에서는 평지설교(6,20-49 참조)에 해당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루카복음의 황금률도 평지설교의 결론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수께서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을 완성하는 방법으로 피력하시는 산상설교나 평지설교에서 그 가르침을 꿰뚫는 정신은 황금률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라’는 것이다. 사실은 황금률보다 더 중요한 것이 복음서에 들어있다. 그것은 바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는 하느님 사랑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는 이웃사랑, 즉 사랑의 이중계명이다. 마태오와 마르코는 사랑의 이중계명을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는 계명으로 제시하고 있으나(마태 22,36-40; 마르 12,28-33), 루카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10,25-28) 제시하고 있다. 요한도 하느님 예수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새 계명’으로(13,34) 제시한다. 물론 모두 다 같은 맥락이다. 이렇게 황금률의 정신을 가지고 첫째가는 계명인 사랑의 이중계명을 실천한다면 신약의 모든 율법을 준수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사랑은 늘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하며,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사랑행위의 표면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언급되기보다는 숨겨져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남을 비판하지 않는 것, 남을 단죄하지 않는 것, 남을 용서하는 것, 남에게 주는 것’ 등이다. 오늘 복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황금률의 정신을 지키는 수준에 머물거나 단순한 사랑실천으로 만족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는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거래의 법칙이 있다. 그것은 주는 만큼 받게 되고, 받은 만큼 주게 되는 법칙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법칙은 다르다. 하느님께서는 받은 만큼만 돌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서’(38절) 우리 품에 안겨주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후한 처사는 하느님의 자비로움 때문이다. 따라서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36절)는 예수님의 요구가 평지설교의 새로운 핵심으로 부각된다. 이는 마태오복음이 율사들과 바리사이들보다 ‘더 의롭게’ 사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한다’(5,48)는 엄청난 요구와도 같은 것이다. 이는 또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3,34)는 새 계명과도 같다. 하느님의 자비로움과 완전함,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은 모두가 원수까지도 예외 없이 사랑하는 무조건적이고 끊임없는 하느님의 사랑에 기인한다. 오늘은 하느님의 후덕(厚德)한 자비로움에 받은 것보다 적게 돌려주려 하고, 준 것보다 은근히 더 받으려는 우리의 간사한 마음을 비추어보아야 할 것이다.◆(박상대 신부)